2024년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잔혹한 한 해였다. 불안과 분노, 슬픔과 황망한 감정을 널뛰기하듯 정신없이 마주쳐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돌이켜 세어봐도 속이 시원해지는 뉴스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에도 버거울 정도다.
지난 2월부터 잔혹한 이야기는 시작됐다. 의대생 2천명 증원을 두고 의료계와 정부가 첨예하게 맞붙었다. 정부가 의대증원을 강행하자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들은 학교를 떠났다. 의료체계의 핵심이 병원을 떠나니 의료공백은 현실화 됐고, 우리는 제때 치료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끊이지 않았던 대형참사는 서로를 충분히 위로하고 아린 마음을 정리할 틈도 주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며 23명의 소중한 생명을 떠나보냈다. 얼마지나지 않아 8월에는 부천시의 한 호텔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새해를 앞두고 179명이 사망한 무안 제주항공 참사에 대한민국은 깊은 애도와 아픔에 빠졌다.
국민의 일상을 위협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은 우리를 분노케 했고, 시민들은 응원봉과 촛불을 들고 다시 거리로 모였다.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내란을 벌였음에도 수사에 응하지 않고, 한남동 관저에 숨어 자신의 체포를 반대하는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윤 대통령의 행태는 우리의 속을 터지게 했다.
잔혹한 세월을 보냈음에도 국민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스스로 회복했다. 아픔이 있는 곳에 찾아가 따뜻한 손길로 위로했고, 비정상적인 내란 시국에 분노했지만 축제의 분위기로 풀어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국민들이 잔혹한 길을 헤쳐나간 것이다.
잔혹한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며 언제 끝날지 미지수다. 새 잔혹동화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험악한 길을 언제까지 우리의 힘만으로 넘어갈 수 없다. 2025년에는 현명한 국민에 국가가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겪을 잔혹함을 국가가 먼저 막아야 한다. 잔혹동화를 마치고 기댈 언덕이 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한규준 사회부 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