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시네마에서 본 ‘밀레니엄 맘보’

이십년 지나 다시 만나니 기분 묘해

인생 짙어지면서 영화는 멀어졌지만

예술 일렁이는 공간 그 자체로 영화

새해 자주 아트하우스 찾기로 결심

김성중 소설가
김성중 소설가

이제는 작년이 되어버린 2024년의 12월31일, 나는 정동에 있는 아트시네마에서 ‘밀레니엄 맘보’를 보았다. 무척 좋아했던 대만감독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로 몽환적인 오프닝 장면이 유명하다. 개봉 때도 보았지만 이십년이 지나 다시 만나니 기분이 묘하다. 푸른 화면에 위태롭게 걷는 배우가 이십년 동안 정지되어있다가 다시 걸어가는 느낌. 영화의 시간이 그렇다. 필름에 감겨있는 제한적이고 이상한 불멸. 그런데 내가 이 영화를 어디서 보았더라?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으로 향하는 골목길이 떠올랐다. 그때는 서울 아트시네마가 ‘아트선재센터’에 있었는데….

내 인생에서 영화를 집중적으로 많이 보던 시기는 백수에 연인도 없는 이십대의 막간극 같은 때였다. 작고 영세한 문화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이년 남짓 출퇴근을 하고 백수가 되었다. 몇 번 더 이어질 회전문을 첫번째로 통과했을 뿐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잡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도. 잡지사에 다니다 잡지가 접히면 백수가 되어 나온다. 자유롭게 기고할 수 없는 ‘자유기고가’가 되어 이리저리 글품을 팔아 용돈을 겨우 번다. 그럴 때 자주 가는 곳은 종로에서 안국역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이다. 옆에는 다음 남자친구의 후보거나 그저 영화광에 불과한 사람이 있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들의 그림자는 희미하지만 고다르와 트뤼포, 키아로스타미와 허우샤오시엔이 불러온 배우들의 모습은 선명하다. 그들은 나와 함께 특정 시간으로 숨어든 생령이었으니까.

그들을 만나려면 예술영화관으로 가야한다. 오래 전에 사라진 코아아트홀의 비좁은 객석이 떠오른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눈물을 그치지 못해 인사동으로 건너가 첫 번째 맥주를 마실 때까지 줄줄 울던 기억도. 낙원상가의 넓은 옥상과 파란 하늘도 떠오른다. 필름포럼과 아트하우스가 나란히 허리우드 극장으로 이사를 갔던 시기에는 이곳을 자주 찾았다. 기형도와 콜라텍, 예술영화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공간은 그 자체로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트하우스는 그 후 서울극장으로 이사를 갔고, 서울극장마저 문을 닫자 현재의 자리인 경향신문사 사옥에 정착했다. 아트하우스가 이렇게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는 사이 나는 백수였다가 직장인이다가 작가가 되었고, 미혼이었다가 기혼이 되고 엄마가 되면서 인생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었다. 인생이 짙어지면서 영화는 멀어졌고,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는 일년에 한두편 볼까말까한 사람이 되어 아트시네마가 정동으로 옮겨온 것도 몇 주 전에야 알았다. 그 역시 영화가 불러온 우연이었다. 십년에 한편씩 영화를 만드는 빅토르 에리세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상영 종료 직전에서야 보고, 이 감독의 데뷔작 ‘벌집의 정령’을 찾아보다가 아트하우스에서 튼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된 것이다. 두 영화에는 한명의 배우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벌집의 정령’에서 주인공이었던 아역 배우가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중년의 여성으로 나온다. 나는 중년의 여성부터,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그녀가 아이였던 모습을 지켜본 셈이 되었다. 아름다운 두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감독의 명성에 힘입어 세상 어딘가에서 두 영화가 연달아 상영되기도 했을 거라고. 그러면 관객은 사십년의 시간을 당기거나 밀면서 보게 됐을 거라고 말이다. 기적은 아니지만 기적처럼 경험되는 아찔한 감각. 어떻게 이런 기쁨을 잊고 살았지? 상실과 더불어 충만한 감정이, 시간 밖으로 굴러가버린 또 다른 시간 조각을 찾아낸 기분이 들었다.

12월31일과 1월1일에는 결심에 담긴 미래들이 들어선다. 새해에는 자주 아트하우스를 찾기로 결심했다. 결심을 공고히 할 생각으로 육만원을 주고 관객회원으로 등록도 했다. 젊고 가난한 백수였을 때 해보고 싶던 일 중 하나를 중년이 되어 충동적으로 저지른 것이 뿌듯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서울 아트시네마는 예술영화를 실은 채 대도시 이곳저곳에 세 들어 산다. 부산 아트시네마가 닻을 내려 전용관이 생긴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수많은 시네필의 골방이자 광장인 이 배가 작은 섬 하나를 얻어 더는 이사 걱정 없이 스크린의 유령들을 불러오기를 소망한다.

/김성중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