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사고·비상계엄 후폭풍 등 절망의 연속

불안정한 정국 속 민생경제 역시 처참한 수준

혼란·애도 극복하고 일상 회복해야 하는 시점

국민들 마음 속 희망의 불씨 되살아나길 기대

황성규 사회부장
황성규 사회부장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는 시조를 자주 읊어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멋있어 보였다. 시조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단어는 물론 의미도 이해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따라하다 보니 어느샌가 어린 아이의 입에서도 시조가 줄줄 나왔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은 진짜였다. 의미도 모른 채 중얼중얼 반복해서 따라하다보니 꽤나 많은 시조를 머릿속에 담을 수 있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각 구절구절이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다.

아버지께 처음 접했던 시조가 고려 충신 정몽주의 ‘단심가’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아버지는 태조 이방원의 ‘하여가’와 함께 이 시조가 탄생한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함께 설명해 주셨다. 시조에 부심이 강하셨던 터라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2집 타이틀곡 ‘하여가’를 두고 감히 어디서 하여가를 가요 제목으로 쓰냐며 화를 내셨던 일화도 생생하다. 의왕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포은아파트를 볼 때면 정몽주의 호가 ‘포은’이라는 설명을 백번도 넘게 해주셨다.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시조의 한 구절이 요즘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들린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상헌의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에서 종장의 첫번째 부분에 나오는 ‘시절이 하 수상하다’라는 구절이다. 단어 뜻 그대로 풀이하면 시절이 평소와 많이 다르다 정도로 해석된다. 따뜻한 연말, 희망찬 연초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는 작금의 상황이 딱 그렇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2년만에 이번엔 무려 179명이 여객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황망한 사고가 터졌다. 피해자와 유가족은 물론 온 국민들이 깊은 슬픔에 빠졌다. 지독했던 폭염이 지나자 겨울의 시작점에 난데없는 폭설이 수도권을 뒤덮었고,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든 시점이지만 피해 복구는 더디게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에서 촉발된 후폭풍은 한 달 넘게 온 국민들을 망연자실로 내몰았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는 비극이 또다시 반복됐고, 수사 대상에 오른 현직 대통령에게 체포영장까지 발부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소식이 연일 외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일의 연속에 국민들의 분노는 허탈감과 상실감, 좌절감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두고 지난 3일부터 수천명의 시민들이 서울 용산 한남동 관저 앞에 몰려들었다.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매서운 날씨에도 이들은 밤새 눈을 맞으며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다만 명확히 둘로 갈렸다. 한쪽에서는 빨리 잡아가라고, 다른 한쪽에서는 절대 잡아가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극단의 정치가 정점으로 치달은 모양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곧 적이다.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났다.

불안정한 정국 속 민생경제 역시 처참한 수준이다. 탄핵 정국에 이은 여객기 참사로 연말 송년행사가 대부분 취소되자 특히 자영업자들은 눈물을 삼키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좀처럼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국 속에서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불안과 절망의 시대를 지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이다. 희망은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고,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혼란과 애도를 극복하고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통해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12간지 중 뱀은 지혜롭고 신비로운 동물을 상징한다. 푸른 뱀의 해를 맞아 불안정한 시국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하 수상한 시절을 벗어나 모든 국민들의 마음 속에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황성규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