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다’, ‘낯설다’에 유래 두고 있듯
묵은 해 떨치고 새로운 해 맞는 날
아직도 ‘구정’이라 불리는 설 명절
본 이름 되찾고 정체성 바로 세워야
모두가 따뜻한 정과 의미 공유하길
새해를 맞이하며 가장 큰 설렘은 가족과 함께 설 명절을 준비할 때이다. 그러나 설 명절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이유가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설을 ‘구정’이라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명칭의 문제가 아니다. ‘구정’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음력설을 폄훼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하기 위해 만든 잔재로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은 부끄러운 유산이다. 이러한 잔재를 바로잡고 설을 본래의 이름으로 되찾는 일은 단순한 언어적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전통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일제는 우리의 글과 말, 성과 이름을 빼앗고 심지어 민족의 전통까지 왜곡했다. 음력설을 ‘구정’이라 부르게 하고 양력설을 ‘신정’으로 명명하며 우리의 전통 명절을 점차 배제하려 했다. 이는 한민족의 정신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문화 침탈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구정’이라는 이름은 약 45년간 사용되었고 설 명절은 공휴일로 인정받지 못했다. 설이 본래의 이름과 자리를 되찾은 것은 1989년의 일로 단순히 공휴일을 얻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을 되찾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설’의 의미는 단순히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선다. 묵은해를 떨쳐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날이다. ‘설다’, ‘낯설다’에 유래를 두고 있듯 새해를 맞이하는 낯섦과 새로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설은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고 전통을 되새기며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가장 강렬하게 반영하는 명절인 것이다.
다행히 현재 달력에서 ‘구정’이라는 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노력이 만들어낸 변화이다. 그러나 여전히 양력설을 ‘신정’으로 부르는 관행은 남아 있다. ‘신정’이라는 용어는 일본이 음력설을 배제하고 양력설을 새해 명절로 만들기 위해 도입한 이름이다. 우리가 설을 ‘구정’이라 부르지 않듯이, 양력 1월1일도 단순히 ‘새해 첫날’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명칭을 바로잡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행위이다.
‘설’과 관련하여 달력을 기준으로 새해의 시작을 따져 보면 양력 1월1일은 을사(乙巳)년의 시작이 아니다. 음력으로 계산하면 2025년 1월29일, 즉 음력 1월1일이 진정한 을사년의 첫날이다.
이는 우리의 전통이 단순히 달력에 따른 날짜가 아니라 시간과 계절, 역사의 맥락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방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설 명절은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는 중요한 시점이며 달력을 넘어선 우리의 고유한 시간 감각을 되살리는 기회이다.
설 명절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념된다. 베트남에서는 ‘뗏(Tết)’, 중국에서는 ‘춘절(春节)’, 몽골에서는 ‘차강사르(Цагаан сар)’라는 명칭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이들 명절은 각국의 전통과 문화를 반영하며 민족적 자부심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도 점차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며 재한 외국인들과 설 명절을 함께 기념하는 풍경이 늘어나고 있다. 설이 더 이상 한국인만의 명절이 아니라 다문화 사회의 화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회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설을 설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한 명칭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전통과 자존심을 지키는 행위이다.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고 본래의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설 명절의 본래 이름을 되찾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계승하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전통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이다. 2025년 설 명절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재한 외국인 모두가 설의 따뜻한 정과 의미를 공유하기를 바란다.
모두가 새해 복을 나누고 설 명절을 통해 더 큰 화합과 소통을 이루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설을 설이라 부르며 우리의 전통을 바로 세우는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가야 한다.
/김구용국 경기도외국인복지센터장협의회 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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