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 포스트(WP)가 만평 스캔들에 휘말렸다. 사주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를 비판하는 만평 게재가 불발되자 작가가 사직했다. 만평엔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트럼프 당선인 동상 앞에 무릎을 꿇고 돈가방을 바치는 모습을 그렸다는데, 미키마우스도 함께 엎드렸단다.

만평의 거부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달러씩 기부했다. 트럼프의 성추행을 강간으로 발언한 앵커 때문에 명예훼손 소송에 걸린 ABC방송은 최근 트럼프 측에 1천500만 달러를 치르고 소송 종결에 합의했다. 무고한 미키마우스가 디즈니의 모회사인 ABC 대신 조아렸다. 만평 작가 앤 텔레이스는 “억만장자인 IT, 미디어 거물들이 차기 대통령에게 아첨하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라며 “진실에 힘을 부여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기 때문”이라는 사직의 변을 남겼다.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는 WP의 사훈이다.

한 컷 만평에 담긴 풍자와 비판은 노골적이다. 공감하는 대중에겐 통쾌하고, 대상에겐 치욕적이다. 필화가 잦은 배경이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는 2015년 이슬람 무장단체의 총격 테러로 편집국이 쑥대밭이 되면서 언론 자유의 표상으로 세계의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해변에서 숨진 시리아 난민 아동 아일란 쿠르디를 조롱한 만평으로 국제적 비난을 자초했다. 표현의 자유와 명예 훼손의 경계는 종이 한 장보다 얇다.

WP 만평 스캔들은 언론과 정치·종교 권력의 전통적인 갈등과는 달리, 언론 내부 권력이 작동한 사례다.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를 독차지하자 미국 조만장자들이 트럼프 앞에서 재롱잔치를 벌인다. 베이조스는 지난 대선에서 WP의 캐멀라 해리스 지지 사설 게재를 막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만평 게재까지 불발되자 1877년 창간한 WP의 역사와 권위가 흔들린다.

사회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공론장을 지배했던 전통 언론이 SNS 미디어로 무장한 극단적인 대중 세력에 의해 해체되고 있다. ‘좋은 놈’과 ‘나쁜 놈’들이 SNS미디어로 그저 ‘이상한 놈’으로 세탁돼 비판과 찬사의 경계에서 활개친다. 거대 자본과 자기 권력에 침식된 전통 언론들은 권력의 추이를 추종한다. WP 만평 스캔들, 그냥 지나칠 해프닝이 아니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