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 속 버려진 네 명의 배우들 이야기

무대를 서야 존재 자각… 극 중 극에 ‘이방인’

송유택, 시지프스 ‘언노운’·이방인의 ‘뫼르소’

 

“외향·감정적으로 메마르지 않고 자신에 집중

제가 극에서 표현하는 뫼르소와 저의 닮은 점”

뮤지컬 ‘시지프스’는 지난해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DIMF)에서 창작지원사업 작품으로 선정돼 7월 6일과 7일 대구 대덕문화전당에서 첫선을 보였다. 작품은 DIMF 시상식에서 창작뮤지컬상, 아성크리에이터상, 여우조연상 등 3관왕을 달성하고 현재 서울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본 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극은 무너진 세상 속에서 버려진 네 명의 배우들이 함께한다. 결국 무대에 서야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 배우들에게 극 중 극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주어진다. 철학적인 무게감은 덜어냈다. 대신 이방인을 연기하는 그들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무대에 펼쳐 보인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 장면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 장면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DIMF부터 본공연까지 함께하고 있는 배우 송유택은 시지프스에서 ‘언노운’ 역이자 이방인의 ‘뫼르소’ 역을 맡았다. 송유택은 “시지프스 신화에서는 매일 끊임없이 돌을 굴리는 것이 형벌로 표현돼 있지만, 배우가 하나의 캐릭터가 끝나면 또 다른 캐릭터를 만나 돌을 굴리는 행위가 비슷하게 닮아있다”며 공감을 나타냈다.

그는 “돌의 무게가 어찌 됐든 결국 굴러가게 하는 것은 저의 의지”라며 “그 의지를 일깨우고 북돋아 주게 하는 스스로에 대한 힘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고 말했다. “부담과 책임감은 있지만, 즐기는 것 자체가 우선”이라고 강조한 송유택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무대에서 스스로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매회 불 태우며 연기하고 있다고.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 장면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 장면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이러한 송유택의 마음가짐은 무대에서도 잘 나타난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혹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부조리는 ‘뫼르소’라는 인물로 깊게 묻어나고, “돌 굴리는 거, 엄청나게 재밌다”고 외치는 배우이자 메신저로서 관객과 호흡하며 더 가까이 다가간다. 다만 송유택이 표현하는 ‘뫼르소’는 소설 속 인물의 버석함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는 “외향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메마르지 않으면서, 속으로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지점이 많다는 점이 제가 극에서 표현하는 뫼르소와 저의 닮은 점”이라며 “그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만 알 수 있는 거라 그 지점까지 단순하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설 이방인 속 태양, 극한 몰아붙이는 ‘트리거’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퍼져나가는 붉은빛·진동

“희망 보여드리고 싶어… 극복도 태양을 통해”

 

후반부 연습중 내뱉은 대사가 정식 채택되기도

“이 대사 통해 뫼르소가 다른 사람들과 같거나

더 나아간 사람 될 수도 있었구나 짚어주고…”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 장면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 장면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시지프스’를 보다 보면 그들을 둘러싼 ‘태양’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소설 이방인 속 태양은 광증을 불러일으키는, 한 인간이 붙잡고 있는 이성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트리거 역할을 한다. 무대에서 보여 지는 태양 역시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퍼져나가는 붉은빛과 강한 진동으로 객석을 파고든다.

그렇다면 송유택에게 태양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그는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극복도 태양을 통해 하고 싶었다”며 “태양이 모든 것을 집어삼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또 태양을 향해 계속 달리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하며 연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극 속에서도 항상 태양을 마주 봤던 것 같다. 그 태양에 잠식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곳을 뛰쳐나가 다시 저 위에 떠 있는 태양을 향해 달리는 것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뫼르소이자 언노운, 인간 송유택이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후반부에 나오는 “나는 더이상 이방인이 아닙니다”도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대사다. 송유택이 연습 중 장면에 몰입하다 내뱉은 이 대사는 추정화 연출과 창작진들의 동의를 얻어 무대에서 들려줄 수 있게 됐다. 송유택은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우리는 계속 나아갑니다’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 말씀 드렸는데 흔쾌히 좋다고 해주셨다”며 “이 대사를 통해 뫼르소가 다른 사람들과 같거나 혹은 더 나아간 사람이 될 수도 있었구나라는 것을 짚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뮤지컬 ‘시지프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지프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더불어 송유택은 “예술에는 불분명한 빈틈은 없다”는 자신만의 철학도 밝혔다. ‘시지프스’라는 작품이 그의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송유택은 “의도가 있는 빈틈에 대해 해석의 자유를 주는 것은 너무나 동의하고 찬성하지만, 무책임하게 버려진 빈틈을 채워야 하는 것은 관객이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약속된 지점들 자체를 관객분들에게 헷갈리지 않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호와 불호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해석과 견해의 차이이다. 저는 시지프스라는 극이 던지는 메시지의 명확함과 깔끔함이 좋았다”는 생각을 전했다.

시지프스가 매일 돌을 굴리는 행위는 어쩌면 하루하루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앞 뒤가 꽉 막혀 있는 것 같은 세상에서 출구를 찾는 방법은 극에서 말하듯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주 보고 깨닫고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뛰는 심장을 움켜쥐고 삶의 의지를 이야기하는 뫼르소이자 언노운, 그리고 배우 송유택은 “남은 공연 기간 최선을 다해 그 말을 뱉어내겠다”고 말했다. 뮤지컬 ‘시지프스’는 3월 2일까지.

뮤지컬 ‘시지프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지프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