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헌법으로 민주공화국 이상향 세웠지만

불완전 권력체제로 끊임없이 개헌 요구 직면

야당 입법독점과 계엄 선포로 유효기간 종료

선거구제까지 개혁해 제7공화국 열어야 할 때

윤인수 주필
윤인수 주필

1987년 9차 개헌의 역사적 의미는 군부독재 종식이었다. 기나긴 정치겨울 끝에 6월 국민항쟁으로 되찾은 자유광장에서 정치권은 들떴다. 유신체제 몰락으로 잠시 찾아왔다가 허망하게 날아간 서울의 봄을 기억하는 대중들은 즉시 개헌을 요구했다. 여야 교섭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제안한 개헌안을 10월 29일 국민투표로 확정했다.

군부독재 청산이라는 대의는 명료했지만 민주주의를 반석에 올려놓을 이상적인 권력체제를 숙의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국민은 대통령 직선을 민주화의 종결로 굳게 믿었다.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중임제 등 민주선진국 권력체제를 비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5년 단임 직선 대통령제 개헌은 대통령 당선을 자신했던 1노3김이 대중의 열망과 타협한 산물이었다. 그 결과로 쿠데타 세력의 주역인 노태우가 6공화국을 열어젖히는 영광을 누렸다.

불완전한 권력체제로 인해 87헌법은 끊임없이 개헌 요구에 직면했다. 대통령과 국회의 임기 불일치가 책임정치의 걸림돌이자 정쟁의 원점인 현실이 곧바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90년 여소야대를 일거에 뒤집은 3당합당의 동력은 1노2김(김영삼·김종필)의 내각제 개헌 각서였다. 김대중 정권의 탄생 동력도 역시 DJP의 내각제 개헌 합의였다. 각서와 합의는 대통령이 되려는 자와 된 자의 거부로 휴지조각이 됐고 내각제 개헌은 물 건너갔다.

대통령을 욕하면서도 내각제에 회의적인 여론에 정치권은 대통령 5년 단임제 수정 개헌에 집중했다. 대통령과 국회 임기를 맞추어 대통령제를 안정시키자는 제안과 공약이 내각제 개헌 무산 이후 지금까지 이어졌다. 노무현과 박근혜는 공식적으로 개헌을 제안했지만, 임기 말 레임덕과 국정농단 사건으로 불발됐다. 문재인의 개헌안 발의는 국회에서 무산됐다. 현직 대통령의 정국관리용 개헌 제안을 각 정당들의 미래 권력들이 외면하는 형국이 반복됐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서 이상향 마꼰도를 건설한 부엔디아 가문은 7대에 걸친 근친혼으로 외부와 단절된다. 마꼰도는 소멸하고 돼지꼬리 후손의 탄생을 끝으로 고독하게 멸족한다.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의 비극은 외부와 단절된 채 내부 갈등에 피폐해진 남미 국가들의 비참한 현실을 은유한다. 책이 출판된 1960년대 남미는 그랬다. 우리 정치도 87년 헌법으로 민주공화국이라는 이상향을 세웠다. 하지만 그 헌법이 제도화한 정적들의 적대적 공생으로 정치는 열성 유전자를 대물림했다. 그 결과로 돼지꼬리 달린 정치인들이 출현해 정치가 기형이 됐다.

87헌법은 비정상 권력과 정치인들의 전횡에 속수무책이다. 비상계엄 이후엔 헌법의 빈틈을 타고 국정 여기저기서 누수가 발생했다. 대통령권한대행의 직무 범위가 모호해 정부는 구멍이 숭숭 뚫렸고,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는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랐다. 정적들의 재판과 심판을 나눠 짊어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시곗바늘 속도에 따라 권력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은 터무니없다.

아무리 사악한 불행도 행운을 동반한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40년 가까이 립서비스에 그쳤던 10차 개헌론이 진지해졌다. 헌정회의 정치 원로들이 새해 벽두부터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나섰다. 21세기 세계와 담을 쌓은 한국 정치는 1960년대 남미식 정치로 타락했다. 야당의 입법독점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87헌법의 유효기간은 종료됐다. 유효기간을 연장하면 대한민국은 87헌법 안에서 정치적 고독사를 면치 못한다.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로 아예 권력구조를 전환하든, 대통령과 국회 임기를 맞추어 4년 중임제로 바꾸든 6공의 실패한 정치구조를 개헌으로 혁신해야 한다. 개헌의 기본 옵션인 선거구제까지 개혁해 새로운 정치로 7공화국을 열어야 할 때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 낸다지만, 새로운 시도가 두려워 현재의 지옥에 머물 수는 없다. 개헌 결사체의 조속한 등장을 고대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