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대표적인 작심삼일 술과 담배
“끊는다” 뜻, 관계 절연 의지 표현
과유불급(過猶不及) 술 뿐이겠나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은 것
올해도 부디 ‘자유의지’가 승리하길
새해가 되면 누구나 작심(作心)을 한다. 비록 삼일(三日)만에 끝날지라도. 대표적인 게 술과 담배이다. 이는 동서양이 비슷한데, 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
예컨대 우리는 “끊는다”고 한다. 사전적으로 보면 이어진 것을 잘라 떨어지게 한다는 거다. 물론 하던 일을 하지 않거나 멈춘다는 뜻도 있다. 영어로는 “그만둔다(quit)”고 한다. 여기에는 떠난다는 뜻도 있다. 한자로는 “금(禁)한다”고 한다. 어떤 일을 못하게 말리거나 감정 따위를 억누르고 참는다는 거다. “끊는다”고 할 때는 술과 담배라는 대상을 파괴함으로써 나와의 관계를 절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다. “그만둔다”는 것은 대상을 그대로 둔 채 자신이 멀어짐으로써 바이바이(bye-bye) 하겠다는 거다. “금한다”는 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도록 강제한다는 뜻이겠다.
어쩌면 술보다 담배가 끊기 쉽겠다. 담배는 스스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술은 더불어 문제이다. 혹자는 담배도 술처럼 권하기도 하고 서로 불을 붙여 주니 더불어 문제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담배는 함께 피워도 취향대로 각각 다른 담배를 피운다. 술은 같은 술을 잔까지 돌려가며 마시지 않나. 더불어 문제인 술은 칼이나 가위가 아니라 입술로 끊는다. 이를 간파한 게 계영배(戒盈杯)이다. 가득 채우려 할수록 오히려 술이 빠져나가는 형태이다. 지나침을 경계하는 술잔인 거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어디 술뿐이겠나. 세상사 모든 일이 지나치면 오히려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은 거다. 공자는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 했다. 공자님이야 나이 마흔에 돈과 권력과 여색의 유혹으로부터 흔들리지 않았다지만 어디 장삼이사(張三李四)야 쉬운 일이겠나. 그래서 40세 불혹은 이런저런 유혹이 많을 때이므로 미혹되지 말라는 경계가 아닐까.
다산 정약용도 ‘반 잔 철학’을 설파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자식들에게 술을 경계하는 내용이 있다. 하루는 춘당대(春塘臺)에서 왕과 학사들이 고권(考券)하면서 술을 큰 사발로 마셨는데 학사들이 곤드레만드레 정신을 잃어 남쪽을 향해 절하는가 하면 자리에 누워 뒹굴기도 했다는 거다. 원래 임금은 북악산 아래 있어 신하는 북면(北面)하여 절하는 것이 법도인데 방향을 잃고 남면(南面)해 절하고 어전(御前)임에도 취해서 뒹굴더라는 거다. 다산 자신은 “시권(試券)을 다 읽고 착오 없이 과차(科次)도 정하고 물러날 때 조금 취기가 있었다”고 했다. 이쯤이면 만만찮은 주량인데 그럼에도 자신이 반 잔 이상 마시는 것을 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술 맛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고 했다. 벌컥벌컥 마시면 술이 입술과 혀를 적시지 않고 바로 목구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 진정한 술 맛을 알 수 있겠느냐고 했다. 물론 그가 술을 경계한 것은 공직자로서 자세 때문이겠다. 술자리에 이리저리 얽히다 보면 ‘김영란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 않겠나. 술이야 청탁(淸濁) 불문이나 공직자에게 청탁(請託)은 불법이다.
차제에 담배 끊는 방법도 하나 소개한다. 영화배우 커크 더글라스가 2003년5월16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나의 첫 담배, 그리고 마지막’이다. 그의 아버지는 1910년 러시아에서 이민 왔다. 농부 출신으로 눈만 뜨면 담배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폐암 진단을 받고 담배를 끊기로 했다. 방법은 단순했다. 담배 한 개비를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흡연 욕구가 생길 때 담배를 꺼내 노려보면서 외친다. “누가 강하냐? 너냐? 나다!(Who’s stronger? You-me? I stronger!)”라고 하며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는 거다.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성공한 더글라스는 연기할 때 손 처리가 어려웠다. 이 어색한 손을 자연스럽게 처리하려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담배를 톡톡 치거나, 손가락 사이에 끼우곤 하면 연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TV에 출연하면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됐다. 담배를 끊기로 했는데, 방법은 부친을 본떴다는 거다. “누가 강하냐? 너냐? 나다!”
올해도 부디 ‘자유 의지’가 승리하기를.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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