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소득활동 연계 감액제’ 폐지 불발

상당수 불이익 감수하고 생업전선 뛰어들어

노인 빈곤율 지난해 기준 40.4% 선진국 1위

저출생·소비침체에 고령층 근로 필요한 실정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정부가 노령연금 감액제 철폐 관련 식언(食言)을 했다. 2023년 10월 정부는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 소득활동 연계 감액제’를 폐지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노후 소득을 보장하고 고령자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취지이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이 내용이 삭제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 조정이 시급한 탓에 이번 개혁안에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령연금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을 넘겨 수급연령(올해 기준 63세)에 도달했을 때부터 받는 연금으로 노령연금 소득활동 감액제는 수급자의 월 소득이 ‘일정 기준’을 초과할 경우 국민연금 월 수령액을 많게는 100만원 이상 최대 5년간 깎는 내용이다. ‘일정 기준’이란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최근 3년간 월 평균소득을 뜻하는데 올해의 기준은 298만9천237원이다. 이자·배당소득은 제외하고 근로·사업·임대소득을 합친 금액이다. 특정 수급자에 대한 과(過) 보장을 방지하고 연금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1988년 국민연금제 시행 때부터 도입됐다.

이 제도에 대해 “일하는 노인을 차별한다”며 원성이 높다. 은퇴 후 무위도식하는 노인에 비해 일하는 노인들에게만 페널티를 주는 식이니 말이다. 올 상반기 기준 월 299만원 이상의 소득을 얻은 어르신 12만명은 국민연금이 깎였다. 연금액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내는데, 추가로 감액까지 하는 것은 이중과세란 지적도 있다. 국민연금 수령액만으론 생계가 어려워 은퇴 후에도 일하는 게 반칙인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지난해 기준 40.4%로 선진국 1위이다.

상당수의 고령층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2022년 연금통계’에 따르면 4대 보험이 적용되는 등록취업자로 분류된 65세 이상 인구 904만6천명 중 연금을 받으면서도 일을 하는 노인은 26.5%(239만9천명)에 달했다. 일하는 65살 이상 노인의 비율은 2020년 36.9%에서 지난해 39%로,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하는 비중은 2020년 73.9%에서 지난해에는 77.9%로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는 연금삭감 대상자 수가 적어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감액 대상자는 11만여 명으로 전체 연금 수급자의 2%에 불과한 것이다. 연평균 연금 삭감총액도 2천억원으로 매달 지급되는 연금액 3조6천억원 대비 미미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재직자 노령연금 삭감이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연금삭감으로 절약한 돈으로 사정이 어려운 가입자를 더 두텁게 보장하자는 지적도 있다.

2022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불합리한 제도라며 우리나라에 ‘노령연금 소득활동 감액제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미국은 2000년에 폐지했다. 연금 가입자들이 매달 보험료를 납부해서 획득한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노인인구 증가로 고령 노동자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2009년에 폐지했다.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일하는 노인의 연금을 삭감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그리스, 스페인 등 4개국뿐이나 일본은 현재 정부가 손을 보고 있어 조만간 폐지 내지 완화 쪽으로 결론이 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다. 지난달 24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인구는 1천24만4천550명으로 총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었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앞으로는 고령화 속도가 더 빨라져 연금고갈 시기가 앞당겨짐은 물론 복지·의료비용 증가로 정부의 재정부담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저출생에 기인한 생산가능인구 축소에 소비침체는 설상가상이어서 국가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도 있어 오히려 고령층의 근로를 장려해야 하는 실정이다. 경쟁국들이 정년연장, 노인 일자리 확대 등 고령자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이유이다. 사려 깊지 못한 정부에 실망이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