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마지막이라 예감한 20집 앨범
치열한 예술 정신·궤적 그대로 담겨
‘K-컬처’의 가장 중요한 일원으로서
그의 노래, 위상과 가능성 품고 있어
고향 화성에서 확장적 관심 기울여야
최근 조용필은 스스로 마지막이라고 예감한 20집 앨범을 선보였다. 신곡 ‘그래도 돼’, ‘타이밍’, ‘왜’ 등 일곱 곡을 실었다. 오랜만에 내는 75세 노장의 앨범에 자작곡은 없었지만, 그의 치열한 예술 정신과 궤적은 그대로 담겨 있는 듯했다. 이번에도 조용필은 몇몇 히트곡에 퇴행적으로 안주하는 과거형의 가수가 아니라, 스스로를 언제나 실험의 최전선으로 밀어 올리는 첨예한 현재형의 뮤지션임을 입증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다양한 장르적 파문을 그려감으로써 자신을 영원히 살아있는 예술 정신으로 만들어냈다. 이로써 그는 다시 한 번 그가 왜 ‘가왕’이라는 비유적 명명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를 실감케 해주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간 음악적 열정으로 확연한 존재 증명을 수행하였다. 아직은 마지막이 아니라고 속삭이는 듯한, 항구적 젊음의 힘으로 외치는 듯한, 여전히 ‘위대한 탄생’을 꿈꾸는 그만의 예술적 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조용필은 1950년 3월21일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그곳 송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송산중학교를 다니다가 서울 경동중학교로 전학하였는데 이때 당시 아역배우로 유명하던 안성기를 만난 일화는 꽤 유명하다. 송산초에는 ‘40회 졸업생 조용필’을 기념하여 팬클럽에서 심은 나무가 우뚝하게 서있고 그가 6년간 머물렀던 조용한 교정이 아담하게 펼쳐져 있다. 그 옆으로는 ‘조용필 노래비’가 단정하게 들어앉아 있는데 거기 새겨진 노래는 ‘꿈’이다.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고향을 떠난 모든 이들의 사향가(思鄕歌)로서 지금도 우리 가슴에 번져온다. 조용필은 세상이 ‘나의 꿈’을 알아줄까를 노래하였는데, ‘화려한 도시’와 ‘고향의 향기’가 거느린 대칭구조 속에서 그 향기를 ‘듣는’ 품이 ‘시인 조용필’에 천천히 육박해간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시대는 청년들이 화려한 도시를 찾아왔지만, 춥고도 험한 그곳을 등지고 꿈속에서나마 고향의 향기를 온몸으로 들으려 했던 그런 때였을 것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로 선풍을 일으킨 ‘웰컴 투 삼달리’에서도 이 노래는 시종일관 주제곡 역할을 해주었다. 인물들의 예쁜 사랑이야기에 실린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라는 노랫말은 그들의 고향 제주 바다를 더없이 아름답게 물들여주었지 않은가.
화성은 열다섯 살까지 조용필의 생애를 가능하게 해준 공간적, 정서적 모태이다. 화성은 언제나 내게 조용필과 차범근의 고향이라고 기억되고 있고,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를 열었던 노작 홍사용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이 들어서 있어 많은 분들이 그곳에 들러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읊조리는 도시로도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조용필의 지극한 예술적 에너지를 태동시킨 화성에서 이 위대한 아티스트의 음악 세계를 해석하고 기념하고 확산해갈 방안을 탐구해가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동안 우리가 사용해온 ‘K-컬처(culture)’의 가장 중요한 일원으로서 그의 노래는 그 위상과 가능성을 단연 풍요롭게 품고 있다. 이제 그의 고향 화성에서부터 한류 콘텐츠 차원에서 그의 음악에 대해 확장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문화의 지도가 그려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특별히 음악 전통에 관심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조용필의 노래를 활발하게 소개하는 흐름이 강해지기를 희망해본다. 주지하듯 한국문화의 개화를 지향해갈 때 좋은 콘텐츠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새로운 콘텐츠 발굴과 소개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전통 예술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전통과 새로운 지향의 쌍방향과 호혜성이 필요한 것이다. 음악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인간들로 하여금 예술적 존재자로 성장하게끔 하는 문화예술의 중요한 영역이다. 이제 우리는 지방정부가 나서, 조용필에 대한 더욱 탄탄하고 견고한 공공적 구조를 가지게 해줄 것을 요청한다. 생가 복원, 공원 조성, 가요제 개최, 조용필 노래로 만든 내러티브 관련 예술(연극, 연화) 개발이 절실한 때이다. 조용필의 음악이야말로 이 시대의 한류 콘텐츠로 확장해갈 가능성으로 충일한 자산이 아닌가 하고 새삼 강조해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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