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트플랫폼 거친 예술가들 협업 기획전

뉴로모픽 공학 전문가 참여 ‘AI 청문회’ 등

11개 팀의 매체, 영역 넘나든 작업 돋보여

 

공공 예술 창작 레지던시 관한 질문도 던져

근대 건축물에 개관한 ‘IAP 아카이브’ 눈길

인천아트플랫폼 기획전 ‘협업의 기술’ 포스터. 전시 콘셉트에 맞춰 독일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신덕호와 파벨 볼로비치의 협업으로 제작했다. /인천문화재단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기획전 ‘협업의 기술’ 포스터. 전시 콘셉트에 맞춰 독일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신덕호와 파벨 볼로비치의 협업으로 제작했다. /인천문화재단 제공

2009년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한국의 주요 예술 창작 레지던시 기관으로서 입지를 다지며 동시대 예술가들의 안정적 창작 환경을 제공해 왔다. 이를 통해 일정 기간 자연스럽게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한 레지던시 입주작가들은 다양한 방식의 교류와 협업을 이어 왔다.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10월25일부터 진행 중인 기획 전시 ‘협업의 기술’은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쳐 간 작가들 가운데 이번 전시를 위해 협업한 개별 작가들과 기존 2명 이상으로 팀을 이뤄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11개 팀(18명)이 보여주는 ‘협업’은 창작 공간이 갖는 역할과 의미를 되짚게 한다. 전시는 내달 2일까지다.

예술가들의 협업의 기술

아티스트 듀오 ‘방앤리’가 뉴로모픽 연구자 박종길 KIST 선임연구원과 협업해 제작한 영상 ‘AI 예언자 공청회’(2023)과 설치 작품들. 2024.1.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아티스트 듀오 ‘방앤리’가 뉴로모픽 연구자 박종길 KIST 선임연구원과 협업해 제작한 영상 ‘AI 예언자 공청회’(2023)과 설치 작품들. 2024.1.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전시는 다양한 형태의 ‘협업의 기술’을 선보인다. 우선 예술과 비예술로 단순히 가르는 경계를 넘어 과학 등 다른 분야 전문가와 함께한 사례가 눈에 띈다. 방자영과 이윤준으로 구성된 팀 ‘방앤리’(2014년 입주작가)는 인간의 뇌 기능을 모사하려는 공학 분야인 ‘뉴로모픽’(Neuromorphic) 연구자 박종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과 협업한 영상, 설치, 회화 작품을 전시했다.

방앤리가 전시장에 구성한 세계는 텅 빈 도로의 풍경과 도로 위 낙타 조형물의 모습을 담은 회화 2점을 지나 ‘사건의 재구성’(2023)이란 미니어처 설치 작업으로 시선을 닿게 한다. 자율주행 차량이 멸종된 동물을 만나 우발적 사고를 일으키는 현장을 묘사했다.

이 사건은 바로 옆 고풍스런 공간에 마련된 3개 채널 영상 작업 ‘아이샤인’(2023)과 ‘AI 예언자 청문회’(2023)로 이어진다. 영상은 뉴로모픽 칩을 장착한 초지능의 ‘AI 예언자’를 탑재한 완전 자율주행 차량이 상용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을 대신해 AI가 모든 판단과 결정을내리는 기술사회를 그린다. 이들의 작품 전반에는 과학기술 윤리와 딜레마뿐 아니라 시청각 장애인의 예술 작품 접근성 향상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동시대 서화에 자신의 해석을 더한 새로운 그림의 ‘황씨화보’ 연작을 이어 가는 황규민(2023년 입주작가)은 ‘직조회화’라는 독보적 작품 세계를 구축한 차승언(2019년 입주작가)의 작품들에서 영감받은 ‘차승언화보’(2024)를 전시장 1층과 2층에 걸었다. 두 작가의 나이가 20세란 점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차승언 作 ‘능직얼룩’(2019) 시리즈와 ‘세 개의 일’(2019).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차승언 作 ‘능직얼룩’(2019) 시리즈와 ‘세 개의 일’(2019).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차승언의 직조회화에서 영감받은 황규민 作 ‘차승언화보’(2024).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차승언의 직조회화에서 영감받은 황규민 作 ‘차승언화보’(2024).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구자명(2021년 입주작가)과 임선구(2023년 입주작가)는 각각 금속과 종이를 주로 다루는 작가로, 과거 작업실을 공유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서로의 작업 요소를 서로 교환하는 방식의 창작 활동을 이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선 금속을 만드는 ‘불’과 종이(종이죽)를 만드는 ‘물’을 교환했다. 금속에 물을 쓰고, 종이에 불을 써야 하는 당혹스러움을 원동력으로 서로의 작업에 기대거나 지지하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2018년 세계 최고 권위의 전자음악상인 ‘독일 기가-헤르츠 어워드’를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듀오 ‘그레이코드, 지인’(2016년 입주작가)은 신작 ‘업사이드다운’(2024)을 통해 ‘소리’를 전시한다. 콜렉티브 ‘자-아’(Z-A)는 예술계에서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한 프로젝트의 아카이브와 텍스트를 전시장 안팎에서 전시했다.

영상 작업을 하는 문소현과 전자음악팀 ‘COR3A’는 2019년 입주작가로, 수차례 영상과 음악의 협업을 선보인 바 있으며 이번에도 만났다.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장 곳곳을 촬영한 이미지와 가상의 공간을 뒤섞은 문소현의 ‘발견된 위치 없음’(2020)은 그의 자화상, COR3A의 음악과 공연 실황을 새로 넣어 15번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어둡고 몽환적이다.

전자음악 듀오 ‘그레이코드, 지인’의 신작 ‘업사이드다운’(2024).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전자음악 듀오 ‘그레이코드, 지인’의 신작 ‘업사이드다운’(2024).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예술가에게 레지던시란

김정모(2018년 입주작가)와 황문정(2017년 입주작가)은 사적 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협업 형식을 탐구한다. 인천아트플랫폼 E-6호실에 별도로 마련된 이들의 작업은 관람객도 참여할 수 있는 이번 전시의 히든 카드다. 두 작가는 부부 사이라고 한다.

E-6호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핀볼 머신처럼 생긴 김정모의 ‘질문과 대답 사이의 예술’(2024)을 마주한다. 관람객은 “당신은 예술가를 후원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란 질문에 공을 쏘아 올리지만, 자신이 생각과는 무관한 결과를 맞닥뜨리게 된다. 김정모는 예술가 레지던시를 일종의 대피소로 생각했다고 한다. 전시장 안에 ‘골든 하우스’(2024)라는 가건물을 지었다. 관람객은 금색 비상담요 조각을 골든하우스 벽면에 붙여 집을 완성할 수 있다.

김정모의 ‘골든 하우스’(2024). 그 안에는 황문정의 ‘그레이트 아티스트 메이커’(2019) 프로그램을 켠 컴퓨터, 두 작가가 공동으로 제작한 ‘인서트 코인 투 플레이’(2024) 등이 있다.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김정모의 ‘골든 하우스’(2024). 그 안에는 황문정의 ‘그레이트 아티스트 메이커’(2019) 프로그램을 켠 컴퓨터, 두 작가가 공동으로 제작한 ‘인서트 코인 투 플레이’(2024) 등이 있다.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인천아트플랫폼 측은 완성된 ‘골든 하우스’의 비상 담요를 수차례 다시 떼었다. 그때마다 관람객들이 다시 벽면을 채웠다. ‘골든 하우스’ 안에는 레지던시와 예술 창작 지원 제도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이 담겼다. 황문정은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옛 PC 게임에서 착안한 ‘그레이트 아티스트 메이커’(2019)란 게임을 만들어 설치했다. 영국에 있는 델피나 레지던시에 참여했던 경험을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에 녹였다.

두 작가 협업한 ‘인서트 코인 투 플레이’(2024)는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고 즐기던 게임기를 닮았다. 작품에 놓인 동전을 투입하면 작가들이 각각 인천에서 창작 지원금을 받아 제작한 영상 작품을 볼 수 있다. 상영 시간은 100원당 14초다. 두 작가는 지원금을 합해 초 단위로 계산한 영상 길이로 나눠 상영 시간을 도출했다. 김정모와 황문정은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의 운영 재원이 인천 시민의 세금인 것에 주목해 예술가에 대한 시민의 지지와 지원을 이번 작업으로 형상화했다. 이를 통해 시민에게 다시금 지지를 호소한다.

현재 대폭 축소되고 ‘레지던시’란 이름마저 삭제된 인천아트플랫폼 예술가 창작 공간 지원 사업은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황문정의 ‘그레이트 아티스트 메이커’(2019) 게임 프로그램 실행 화면. 관람객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설명서를 옆에 뒀다.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황문정의 ‘그레이트 아티스트 메이커’(2019) 게임 프로그램 실행 화면. 관람객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설명서를 옆에 뒀다.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IAP 아카이브 된 근대 건축물

이번 전시 공간 디자인은 인천에서 금손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손주희 건축가와의 협업이다. 서로 다른 매체의 작업을 굳이 차단하지 않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가벽 설치를 최소화하고, 폐기물 또한 최대한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인천아트플랫폼과 손주희 건축가는 이번 전시와 함께 기존 사무실로 쓰던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등록문화재 제243호)을 ‘인천아트플랫폼(IAP) 아카이브’로 새로 꾸몄다.

지난 15년 동안 인천아트플랫폼이 기획한 프로그램과 예술 활동을 담은 출판물과 자료,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작가 500여 명의 포트폴리오를 누구나 살필 수 있도록 했다. 또 인천아트플랫폼이 구매·기증 등을 통해 수집한 국내외 예술·인문 분야 서적과 도록, 정기 간행물을 비치해 도서관처럼 이용할 수 있다.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에 새롭게 조성된 IAP 아카이브 모습.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에 새롭게 조성된 IAP 아카이브 모습. 2024.1.2 /박경호기자pkhh@kyeongincom

손주희 건축가는 기존 이 공간에서 사용하던 가구 등을 버리지 않고 ‘리폼’(Reform)을 통해 재배치했다. 리폼을 한 부분은 수레국화색을 칠해 알아 볼 수 있게 했다. 폐기물을 최소화하면서 근대 건축물에 어울리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책상과 의자를 놓아 방문객이 쉴 곳이 사라졌던 인천아트플랫폼에 새로운 쉼터를 만들었다. 두고두고 찾을 만한 장소가 됐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