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관점 확대된 후견지명 효과
함의 생각하며 통찰력 얻는 계기
아는 것 실행할 수 있는 힘 생겨
책장 속 책에서 보석 발견할 수도
이런 점에서 시도해 볼 가치 충분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이들이 있다. 처음엔 영화관서 보고 이후엔 공중파·케이블 방송 등을 통해 보는 것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찾아보는 경우도 있지만 우연히 다시 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 다시 보는 것은 영화뿐만이 아니다. 드라마 등과 같은 프로그램도 다시 보기의 주요 대상이다. 게다가 다시 보는 방법도 수월하다. 리모컨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언제든지 원하는 영화·드라마 등을 다시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시 보는 것에 비해 다시 읽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시 읽기의 대표격은 책이다. 책 역시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매체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처럼 같은 책을 다시 펼쳐서 읽는 일은 흔치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같은 책을 다시 읽기 위해서는 개인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버튼 몇 번 누르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정해진 흐름에 맡기는 다시 보기와는 차이가 있다.
다시 읽기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스스로가 의지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야 가능하다. 페이지를 넘기는 것부터 글자를 읽고 행간의 뜻을 유추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서 생각해보는 것 등에 이르기까지 매순간 쉴 틈이 없다. 필요한 경우에는 메모까지 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기는 남다른 매력이 있다. 먼저 기존의 관점이 확대된다. 그 이유는 지난 시간동안 쌓여온 경험과 만나온 사람들 그리고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 책에 담긴 내용들과 교차되기 때문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후견지명(hindsight)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알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같은 책일지라도 수 개월 또는 수 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면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관점이 확대되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도 한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선견지명(foresight)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비교할 수 있는 확장된 관점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음으로 다시 읽기를 통해 입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는 이미 한 번은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개 처음 읽을 때는 책의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 읽을 때는 내용에 담긴 내용, 즉 함의(含意)를 생각하게 된다. 행간의 뜻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이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이나 경험과 접목시켜보는 경우도 생긴다.
이같은 과정 속에서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려지기도 하고 서로 다른 생각과 생각이 연결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이른바 통찰력(insight)을 얻을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된다. 통찰력은 축적된 지식과 경험의 양과도 관계가 있지만 이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도 빠질 수 없다. 다시 읽기는 이와 같은 측면에서 필요하다.
이에 더해 다시 읽으면 아는 것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흔한 착각 중 하나는 한 번 읽었으니 그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몸소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다름 없다. 알고 있다는 것의 완성은 실행이 병행되었을 때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난다. 처음 읽을 때는 책 속에 담긴 내용들을 타자(他者)로 인식하여 낯설게 느끼거나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읽으면서 책 속의 주어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 순간이 아는 것을 실행으로 옮겨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리고 작은 것일지라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다시 읽기는 중요하다. 다시 읽을 책을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부터 다시 읽으면 된다. 어쩌면 살포시 먼지 앉은 그 책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발견할 수도 있다.
다독(多讀)은 새로운 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점에서 다시 읽기는 분명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김희봉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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