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여권 취소로 ‘송환’ 위기

 

군부세력 장악에 민주화 도왔는데

발급 받은 ‘인도적 비자’ 무효 우려

“돌아가면 죽은 목숨… 보호 절실”

8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한 관계자가 아웅산 수지 전 국가자문역의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2025.1.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8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한 관계자가 아웅산 수지 전 국가자문역의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2025.1.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주한 미얀마대사관이 여권 효력을 없애면 저는 한국에서 쫓겨나 미얀마로 추방될 거예요. 미얀마 군부는 민주화운동을 한 저를 살려두지 않겠죠….”

미얀마 군부 세력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온 미얀마인 A(36)씨는 혹여 미얀마로 추방돼 죽임을 당할까 두렵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한국 법무부의 인도적 조치 덕분에 비자가 만료됐어도 미얀마의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인천 부평구, 경기 안산시 등을 기반으로 자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A씨는 동지들과 함께 지난해 12·3 비상계엄 해제를 지지하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 등에도 연대하고 있다.

A씨 등 한국에 정착한 미얀마인들은 최근 주한 미얀마대사관이 여권 효력을 상실시켜 자국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여권 효력이 사라진 이들은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로 송환돼 군부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 있다. 2021년 총선에 불복한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민간인 6천여 명이 사망했다. 미얀마 소식을 전하는 독립 언론 ‘킷띳 미디어’(Khit thit media)에 따르면 군부는 최근 13살 어린이까지 강제 징집해 내전을 치르고 있다.

8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관계자가 정리를 하고 있다. 2025.1.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8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관계자가 정리를 하고 있다. 2025.1.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주한 미얀마대사관은 유효 기간이 만료된 여권을 갱신하려면 군부 세력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며, 일부 민주화운동가의 여권 효력을 강제로 취소시키기도 했다.

A씨는 “주한 미얀마대사관이 지인들에게 전화하거나 집에 찾아와 곧 자국으로 추방될 거라고 협박했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역사가 있는 한국에서 보호와 지지를 받아 기뻤는데 이젠 한국에서도 쫓겨나게 됐다”고 우려했다.

인천 부평구에 있는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는 재한 미얀마인들을 보호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NUG 한국대표부는 미얀마 민주화 세력이 수립한 임시정부를 대표해 한국 외교부와 소통하고 있다.

소모뚜(50) NUG 한국대표부 사무처장은 “주한 미얀마대사관에서 미얀마인들의 여권을 무효 처리하면 한국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발급해 준 비자도 결국 효력을 잃는다”며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시민들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국 국민들이 우리를 도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법무부는 2021년부터 쿠데타로 본국에 돌아가기 어려운 미얀마인들을 위해 인도적 거주 비자(G-1-99)를 부여했다. 이 비자를 받은 노동자, 유학생, 단기방문자들은 과거에 부여된 비자가 만료됐어도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해당 비자를 받은 재한 미얀마인은 지난해 11월30일 기준 6천336명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31개 미얀마민주화운동단체는 최근 성명을 내고 “재한 미얀마인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고 우리를 미등록 외국인으로 전락시켜 한국에서 추방당하게 하려는 미얀마 군부 세력을 규탄한다”며 “이러한 인권 탄압을 한국 정부도 엄중하게 바라보고 우리를 보호해달라”고 촉구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