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랐다.
이명박(李明博.61.한나라) 서울시장 당선자는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 12
년만에 사장에 올랐고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인천제철 등 6개 계열사
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60-80년대 경제개발 시대를 풍미한 샐러리맨의 우
상.
전문 경영인 출신의 강점을 살려 '일 잘하는 경제시장' '서울 CEO(최고경영
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 386세대 대표 주자중 한명인 민주당 김민석
(金民錫) 후보를 누름으로써 '서울신화 창조'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
다.
이 당선자는 1941년 12월19일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의 한 시골에서 가난
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나라당 이상득(李相得) 사무총장은 그
의 친형.
초등학교때부터 김밥과 풀빵을 팔며 고학을 계속한 그는 고려대 상대에 입
학한 뒤에도 막노동과 환경미화원 일을 하며 학비를 조달했다. 대학3학년
때 상대 학생회장에 당선돼 1964년 한일국교 정상화를 '굴욕외교'라며 반
대하는 6.3 시위를 주도하다 반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현승일(玄
勝一) 의원이 '감방 동기' 대학 졸업후 당시 중소기업이던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 5년만에 이사, 12년만인 35살에 현대건설 사장에 오르는 입지
전적 일화를 갖고 있다. 당시 이야기는 TV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극화되기
도 했다. 선거캠프가 있는 무교동 현대빌딩은 그가 입사 면접시험을 본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92년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에는 영욕이 교
차했다. 95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가 정원식(鄭元植) 후보에게
패한 뒤 96년 4.11 총선때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이종찬(李鍾贊) 후보를 꺾
고 당선됐으나 선거비용 초과지출과 비서관 해외도피 혐의로 기소돼 의원직
을 잃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이 문제와 함께 175억원에 달하는 재산형성과정과 관
련, 상대 후보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아 "과거 선거법을 위반한 데 대해 국
민에게 다시한번 고개 숙여 사과드리며, 재산은 현대 재직시 고 정주영(鄭
周永) 회장으로부터 회사에 기여한 대가로 받은 집과 포상으로 받은 땅"이
라고 해명하는데 진땀을 흘렸다.
그는 서민을 위하는 따뜻한 서울, 사람 중심의 편리한 서울, 경제 활성화
로 활기찬 서울이란 3대비전 아래 ▲청계천 복원 ▲저소득층 임대주택 20
만가구 공급 ▲종교단체 참여로 영유아 보육 해결 ▲강남북 교육불균형 심
화 해소 ▲수도권 지하철 급행화 등 대중교통 혁신 ▲예산 1조원 절감 등
12개 핵심과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압구정동 소망교회 장로인 그는 주일마다 교회에서
주차 도우미를 하는 소탈한 구석도 있다.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인 부인 김윤옥(金潤玉.55) 여사와의 사이에 1남3녀
를 뒀으며, 김 여사는 재래시장과 고아원 등 불우이웃시설을 돌며 선거운
동을 도왔고, 장녀 주연씨는 수행하며 옷차림 등의 뒷바라지를 했다.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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