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대통령 비상조치권·국회해산권을 폐지하며 국회 국정감사권을 부활하는 내용 등을 뼈대로 한 1987년 9차 개헌이 통과된 뒤 대한민국 헌법은 38년 간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거치며 ‘개헌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인일보는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시종 대한민국헌정회 개헌특위 간사(전 충북도지사), 박광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연구센터장, 최준영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4인에게 개헌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들은 의원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국회 양원제, 지방분권 등 권력 구조 개편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개헌 시기와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전문가 4인이 생각하는 개헌에 대해 들어본다.
‘단원제 국회’ 독주 막을 상하원제
인사권 등 일부 상원 분배 방안도
새 정부가 헌법 전문 수정 개헌을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여야가 조속히 개헌안에 합의하고, 한 달 내 국민투표를 마치는 원포인트 개헌에 나서야 한다. 선(先) 개헌 후(後) 대선 방식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게 핵심 과제다. 대통령 권한을 현재보다 축소하고, 국무총리에게 일정 수준 책임을 주는 책임총리제를 가미해야 한다.
단원제 국회 역시 입법독주 문제로 인한 한계가 뚜렷하다. 국회가 자율적으로 입법을 조정하는 장치가 현재로선 전혀 없다. 국회 입법독주를 제어하기 위해선 상·하원으로 구성해 권력을 분산하는 양원제가 필요하다. 인사권 등 대통령 권한의 일부를 상원에 분배하는 방안도 있다.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해 지방자치단체장이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자치 규정을 제정할 권한도 필요하다. 지자체장들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행정을 펼치고, 중앙정부와 국회 역시 지자체와 협치할 수밖에 없는 체제로 갈 것이다.
역대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들이 헌정회를 중심으로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부터 개헌 논의를 해 왔다. 분권형 대통령제에 양원제를 가미한 개헌 방안과 함께 의원내각제도 개헌 선택지로 꼽혔다. 의원내각제가 가장 이상적인 제도이긴 하다.
다만 내각제로 가게 되면 국정을 총괄할 총리를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이라는 점에서 국민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헌정회 내부의 다수 의견이었다. 군사정부 시절 대통령을 간선제로 선출했던 것에 대한 부정적 여론, 민주화를 통해 직선제를 쟁취한 경험이 있는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개헌 방향뿐 아니라 시기도 중요하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헌법재판소가 심의 중인데, 탄핵 결과가 나오는 시기와 관계없이 이른 시일 내 여야가 개헌 방안에 합의한 뒤 국민투표를 바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현행 헌법상 여야가 합의한 개헌안을 20일 동안 공고하고, 21일째 되는 날에 바로 국회를 거친 뒤 30일 이내 국민투표를 붙일 수 있다. 개헌안이 공고된 날을 기준으로 22일째 되는 날에 국민투표가 가능한 셈이다. 탄핵 심판 중 개헌해 놓고,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해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되면 현재의 대통령 중심제가 아닌 새로운 체제의 대통령을 바로 선출할 수 있다. 대통령 임기제도 현행 단임제가 아닌 4년 중임제로 개편해야 한다.
그동안 논의됐던 개헌은 전부 개정에 초점을 맞춘 탓에 시작조차 어려웠다. 따라서 탄핵 정국에서 우선 대통령제와 국회 체제를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하고, 새 정부가 들어선 뒤 헌법 전문을 손보는 추가 개헌 작업이 필요하다.
정리/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