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일·사건 하나로 관계가 좌우되거나

‘바보’가 정치 군사 리더들의 위선 실체 폭로

이 작고 시시한 힘과 인생, 얼마나 위대한가

후안무치 정치인 무너뜨리고 세상 바꿀수도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작고 시시하지만 도움이 되는’은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을 우리말로 바꿔본 것이다. 소설은 ‘대성당’에 수록된 작품이다. 번역자는 소설가 김연수. 그는 ‘A small good thing’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으로 번역했다. 작품을 읽어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 소설 제목으로 꽤 잘 된 번역임을 알 수 있다.

‘대성당’에 등장하는 남성 주인공들은 멋진 영웅적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먼 찌질한 이들이 대부분이나, 그래서 더 공감이 가고 현실감을 준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인간적인 내용으로 따뜻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스포일러가 될 위험(?)을 감수하고 작품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엄마 앤은 여덟 살배기 아들 스코티의 생일을 앞두고 빵집에 가서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한다. 그런데 생일날 아침 등굣길에 그만 스코티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있지만 부상 정도가 크지 않아 금방 깨어나 회복될 것이라는 병원의 설명과 달리 스코티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초조와 불안 속에서 부부는 교대로 아들의 곁을 지킨다.

애타는 부부의 마음도 모른 채 “아들 스코티를 잃는 것은 아닌 거냐”는 이상한 전화가 자꾸 걸려온다. 이들은 괴전화의 당사자가 아마도 사고를 낸 범인이 제 발이 저려 전화한 것으로 생각하고 분개한다.

부부의 간절함(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간절함이기도 하다)과 달리 안타깝게도 아들 스코티는 부부의 곁을 떠나고 만다. 부부는 괴전화의 당사자가 생일 케이크 주문을 받은 빵집 주인임을 알아차리고 상황도 모른 채 자꾸 전화를 해 화를 돋우던 빵집 주인에게 사과라도 받을 심산으로 그를 찾아간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빵집 주인의 정성스런 태도와 그가 만든 맛있는 롤빵을 먹고 큰 위로를 받는다.

부부와 독자의 간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설은 소통의 지연과 오해의 방식으로 스토리를 끌고 나가지만, 결론은 작고 시시한 일상적인 일이나 사건 하나가 사람 사이를 망칠 수도, 화해로 이끌 수도, 큰 위안이 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무심결에 지나치고 마는 작은, 알려지지 않은 작품 하나가 우리 마음에 큰 위안이 되고 세상에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필시 문학 속에 내재한 공감주술력 때문일 것이다. 특히 체코의 작가 야로슬라프 하셰크(1883~1923)의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나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인생론’도 이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들로 추가하여 등재해 두고자 한다.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는 웃음을 잃은 우리에게 실소와 소설 읽는 재미를 주는 작품으로 허튼소리와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만인이 동의할 공인 ‘바보’다. 바보를 전면에 내세운 블랙 코미디 소설을 통해 하셰크는 1차 세계대전의 허위와 정치 군사 리더들의 위선과 실체를 폭로한다. 또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삶의 무상과 허무를 강조하는 톨스토이 ‘인생론’의 의도적 유포를 통해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 사회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우리 각자는 작고 시시하며 미약하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결국 우리 인생이 남을 게 하나 없는 무상하고 별 볼 일 없음을 알게 되는 잔인한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작고 시시한 힘과 인생은 사실 얼마나 위대한가. 이들이 모여 불법적 권력을 행사하여 국가와 사회를 위기에 빠뜨린 대통령과 도무지 반성할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정치권력들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작고 시시한 것들’과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문학 작품 하나가 세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깊이깊이 성찰하면 좋겠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