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미스러운 유혈사태 막기 위해 출석 응하지만 인정 아냐” 일축

“계엄 형식 빌린 대국민 호소… 국가 위기 알려 잘했다 생각” 주장

“계엄은 범죄가 아니다.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체포되면서 12·3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심판에 걸린 대통령의 심경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가장 먼저 체포와 동시에 공개한 녹화 영상에서 윤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며 “불법적이고 무효인 절차에 응하는 것은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마음일 뿐”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체포 저지를 위해 관저로 몰려온 의원들과 만나서는 ‘좌파 사법 카르텔’을 언급하며 “내가 어려움을 겪더라도 우리 청년들이 우리나라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되고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토로했다.

■ 불미스런 유혈사태 막기 위해 자진 출석 공수처에 통보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 관저동으로 들어온 검사와 수사관들의 체포영장 제시에 “그래 가자”며 흔쾌히 수용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대통령 자신도 “저는 오늘 이들이 경호보안 구역을 소방장비를 동원해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일단 불법수사이긴 하지만 공수처의 출석에 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제가 이 공수처의 수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석동현 변호사는 기자와 만나 “불법적인 집행에 참담한 심정이지만 집행과정에서 시민들도 다쳤다는 소식도 있고, 경호처와 충돌로 불상사가 나면 안되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고려해 일단 자진 출석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공수처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체포 직전 윤 대통령은 관저를 찾은 국민의힘 의원들을 만나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좌파 사법 카르텔이 얼마나 무섭고 무도한지 오늘 똑똑히 보게 된다. 무법천지”라며 “좌파의 실체를 알게 돼 다행이다. 내가 어려움을 겪더라도 국민들, 우리 청년들이 우리나라의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되고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공수처 출석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2025.1.15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공수처 출석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2025.1.15 /대통령실 제공

■ 새해에 작성한 육필 메시지 공개…“참으로 어이없는 일”

윤 대통령은 이날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이후 만년필로 직접 쓴 육필 원고라며 사진과 함께 약 9천자 분량의 글을 SNS에 공개했다. 그는 이 글에서 “계엄은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며 “‘계엄=내란’이라는 내란몰이 프레임 공세로 저도 탄핵 소추됐고, 이를 준비하고 실행한 국방부 장관과 군 관계자들이 지금 구속돼 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라고 적었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그는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소규모 병력을 계획한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숫자까지 적시하며 상세하게 설명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소추 사항 중 내란죄를 철회한 것에 대해선 “내란몰이로 탄핵소추를 해놓고, 재판에 가서 내란을 뺀다면 사기탄핵, 사기 소추”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서 “취임 이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일만 하다 보니 제가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지내온 것 같다”며 “좀 아이러니하지만, 탄핵소추가 되고보니 이제야 대통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국민들께 국가 위기 상황을 알리고 호소하길 잘했다고 생각된다”는 글도 남겼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글은 “무너지지 않고 싸우겠다는 마음을 그대로 반영해 놓은 글”이라고 한 측근이 말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날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후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 주재로 긴급 수석비서관 회의를 개최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흔들림 없이 각자 자리에서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앞서 국민의힘 의원 30여명은 새벽부터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집결해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에 항의했다.

/정의종기자 je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