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 새바람 일으킬 유승민 회장, 그는 누구인가

 

부천 내동중 시절 소년체전 MVP ‘신동’

왕하오 누르고 ‘아테네올림픽 금빛환호’

낮은 인지도 극복 IOC 선수위원 당선도

2년간 경인일보 오피니언 필진 활동도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14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 42대 대한체육회장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되자 두 손을 들어 감사를 표하고 있다. 2025.1.14 /연합뉴스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14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 42대 대한체육회장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되자 두 손을 들어 감사를 표하고 있다. 2025.1.14 /연합뉴스

‘탁구 천재에서 체육 대통령까지 된 사나이’.

누구도 예측 불가했던 제42대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된 유승민(43) 전 대한탁구협회 회장. 그는 어릴적 탁구 천재에서 행정가를 거쳐 체육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기적의 사나이’로 불린다. 현역 시절 파란만장한 탁구 인생을 통해 한국 탁구를 전 세계에 알리더니 이번엔 국제 스포츠 무대를 넓혀 대한민국의 체육 수장으로 선출되며 제2의 스포츠 인생을 살고 있다. 유승민 그가 궁금하다.

1996년 제4회 경인일보 체육꿈나무 대상을 수상한 유승민 관련 기사. /경인일보DB
1996년 제4회 경인일보 체육꿈나무 대상을 수상한 유승민 관련 기사. /경인일보DB

■ 탁구 신동의 탄생

경인일보 1996년 6월5일자 스포츠면. 당시 신문에는 제4회 체육꿈나무 대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경인일보사는 지난 1989년 수원에서 열린 제70회 전국체육대회를 시작으로 지역 스포츠 선수 발굴을 위해 전국체전 MVP대상 시상식을 마련했고, 1993년부터는 전국소년체전 꿈나무 MVP 대상도 개최해 지역 스포츠인들과 함께 했다.

당시 제4회 수상자로 ‘탁구 천재’ 유승민이 뽑혔다. 전국소년체전에서 구기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우승을 선사하고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쓴 유승민(당시 부천 내동중)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유남규와 김택수를 능가하는 기량은 탁구 신동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그의 실력은 전국을 강타했다.

유승민 당선인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활약하던 모습. /연합뉴스
유승민 당선인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활약하던 모습. /연합뉴스

■ 선수로서의 발돋움

경기도 출신답게 유승민은 아마추어 선수시절 경기도 탁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불굴의 의지로 모든 대회를 석권한 그였기에 한국 탁구는 열광했다.

부천 내동중에 이어 포천 동남종고로 진학을 결정한 그는 전국대회에서 잇따라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하며 한국 탁구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했고, 경기대에 진학해서도 탁구 열정은 대단했다.

그가 선수로서 정점을 찍은 것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었다. 남자 단식에 출전한 그는 결승에서 중국 최강자 왕하오를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을 남겼다. 다른 대회에서 왕하오와 만났을 때는 잇따라 패했지만, 올림픽에선 만리장성의 벽을 허물며 금메달을 확정한 뒤 펄쩍펄쩍 뛰며 김택수 코치에게 안긴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IOC 선수위원으로 뽑혔던 시절 모습. /연합뉴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IOC 선수위원으로 뽑혔던 시절 모습. /연합뉴스

■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

탁구 인생 2막으로 행정가를 택한 유승민은 2014년 현역 선수에서 은퇴 후 잠시 국가대표팀 코치로 일한 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그는 워낙 인지도가 없어 당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러나 그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하루 25㎞씩 걸어다니며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강행군을 펼치며 선수들을 만나 자신의 스포츠 철학을 밝혔다. 그 결과 총 23명의 후보 가운데 2위에 올라 최다 득표 4명까지 주어지는 IOC 선수 위원에 당선됐다.

유승민은 40대 초반의 나이지만 체육행정 경험이 많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선수촌장으로 임명됐고, 올림픽 후에는 2018 평창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2019년에는 조양호 전 회장의 별세로 공석이 된 대한탁구협회 회장 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20년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연임에 성공했다.

제42대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된 유승민이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선거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5.1.14 /연합뉴스
제42대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된 유승민이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선거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5.1.14 /연합뉴스

■ 기적을 바꾼 체육 대통령

이번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말 그대로 ‘대이변’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3선에 도전하는 이기흥 후보가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지난 8년 동안 다져온 표심이 워낙 강력했고, 역대 가장 많은 6명의 후보가 등장했기에 이번 선거는 ‘이기흥’ 대 ‘반(反)이기흥’ 구도로 재편됐다.

게다가 5명의 후보는 단일화에 나섰지만, 협상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1982년생인 유승민을 놓고 ‘젊으니까 다음 기회가 있다’는 말로 양보를 권유해 더는 함께하지 못했다.

이기흥 현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더욱 커지는 분위기에서 밑바닥 표심이 흔들리자 강신욱·강태선 후보는 선거 기간 유승민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유승민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체육회장 선거를 하루 앞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의혹 제기는 사실무근으로 당당히 맞섰다.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선수촌장을 맡았던 유승민 IOC 위원. /연합뉴스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선수촌장을 맡았던 유승민 IOC 위원. /연합뉴스

■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대한체육회

IOC를 비롯해 국제 체육계에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유승민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국제 스포츠 외교력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IOC 선수 위원을 8년 동안 지냈던 그는 이제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수장 자격으로 IOC 위원에 도전할 자격을 갖췄다. 현재 한국인 IOC 위원은 NOC 대표 자격의 이기흥 회장과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 신분의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등 2명뿐이다.

유승민은 회장에 뽑힌 뒤 토마스 바흐(71) IOC 위원장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전화를 통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바흐 위원장은 축하 인사를 건넨 뒤 “이른 시일 안에 스위스 로잔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한 유승민 전 IOC 선수위원. /경인일보DB
지난 2016년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한 유승민 전 IOC 선수위원. /경인일보DB

■ 유승민과 함께한 경인일보

경인일보는 경기도 출신 유승민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선수 시절부터 그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신문에 게재될 정도로 경기도 출신의 탁구 스타였다. 또 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경인일보의 오피니언 필진으로도 활동했다.

[인터뷰… 공감] 유승민 IOC 선수위원

[인터뷰… 공감] 유승민 IOC 선수위원

보이며 국내는 물론 세계를 주름잡았고, 은퇴 후에도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런 그가 이제는 전 세계 스포츠인을 대표하는 IOC 선수위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경기도 출신인 그가 어엿한 한 나라의 스포츠 행정가로 성장한 것이다.6일 오전 용인시 삼성휴먼센터 내 탁구체육관. 이곳에서 유승민 위원을 만났다. 그는 요즘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도 기자들의 인터뷰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반갑게 맞아주었다.IOC 선수위원 당선 소감을 묻자 웃으며 얘기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마냥 좋았는데, 이번에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몰려옵니다. 어떻게 인정받고 평가를 받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가 중요합니다."유 위원의 말대로 그는 앞으로 8년 동안 선수위원으로 활동한다. 게다가 IOC 선수위원은 동·하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등 IOC 위원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니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하다. 그래서 당시 선수위원에 뽑힌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 위원은 자신감이 넘쳤다고 한다. "저는 당선될 가능성에 대해 자신 있었습니다. 안과 밖의 느낌은 달랐습니다. 당선될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수들이 격려의 말을 전했고, 친근감 있게 다가와 주었습니다. 운동하는 것을 봤을 때 '뽑아주고 싶다' 등 격려를 들었을 때 자신감이 생겼고 동기부여도 됐습니다."선수위원에 뽑히기 위해 유 위원이 내세운 전략은 무엇일까. 유 위원은 우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발에 물집이 잡히기까지 했다. "무조건 오랫동안 선수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략보다는 시간 제한이 없는 만큼 나를 알리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움직였습니다."유 위원이 선
https://www.kyeongin.com/article/1101927
[수요광장]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길

[수요광장]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길

apos;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모든 우려는 눈녹듯 사라졌다.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은 실로 대단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은 선수들은 최고의 시설, 안방 관중들의 뜨거운 응원, 자원봉사자 및 지원 스태프들의 따뜻한 미소 속에 지난 4년간 갈고 닦은 최고의 경기력을 뽐냈다. 이 모든 성과 뒤에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평창의 혹한에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넘은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자원봉사자들, 조직위원회와 군·경, 정부의 헌신적인 지원과 노력이 있었다. 특히 현장 응원을 아끼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진심 어린 관심과 지지는 평창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올해 대한민국 체육의 슬로건은 '스포츠 강국을 넘어 선진국으로'다.대한민국은 하계, 동계올림픽을 모두 치러낸 전세계 8개국 중 하나가 됐다.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 이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전세계에 '스포츠 코리아'의 이름을 드높였다. 무엇보다 평창동계올림픽 패럴림픽은 대한민국 스포츠가 한 단계 올라서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선수들의 경기를 즐기는 자세, 메달색에 상관없이 선수들의 투혼에 기립박수를 보내주는 성숙한 관중 매너, 그리고 경기 결과보다 과정에 주목하는 미디어까지 우리는 이번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안팎으로 성장했다.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을 향한 위대한 발걸음을 내디뎠다.평창의 성공은 눈부셨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하거나 성공에 취해 있을 틈이 없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을 뛰어넘어 스포츠의 체질과 내실 측면에서도 더욱 강해지고 깊어져야만 진정한 스포츠
https://www.kyeongin.com/article/1248256

2018년 4월부터 2년간 경인일보 오피니언란 ‘수요광장’ 코너에서 유승민은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길’, ‘대한민국 인재를 국제 스포츠 무대로’, ‘아시아 최초 동계유스 올림픽 유치’ 등 스포츠 행정을 대변하며 한국 스포츠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호평을 받았다.

/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