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수천의 심장을 움직이는 문학

尹 블랙리스트에 이름 올리지 못해

작가로서 책무 다하지 못한 것 같아

국민이 지켜낸 민주공화국 무너뜨린

12·3 불법계엄 시대 오적 누구인가

이원석 시인
이원석 시인

우리에게 실존주의 사상으로 익숙한 프랑스 철학자 샤르트르는 “언어는 장전된 권총과 같다”고 말했다. 조금 유머를 보태자면 이 말은 현실에서의 무력함에 한숨짓는 INFP 내향인 작가들을 격려하는 말일 테다. 물질의 소유가 모든 것을 규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것 없이 펜대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작가들은 문학의 무용함에 좌절한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빵 한 조각이,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는 담요 한 장이 문학보다 더 유용한 법이다. 하지만 그러한가? 장전된 총은 한 발의 총알로 한 사람의 심장을 파괴할 수 있으나 문학은 한 편의 시, 한 권의 소설로 수백 수천의 심장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나치의 부역자들을 처벌할 때 나치에 동조한 언론인과 작가들은 더 가중하여 처벌하였다고 한다. 그 가중은 지식인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책임감의 무게일 것이다. 마을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던 시시비비를 훈장님께 여쭙던 조상들, 동네에서 젊은 학교 선생님이 지나가도 꾸벅 절을 하던 어르신들, 사회 전체의 공동육아에 가까웠던 대학생에 대한 관용과 존중의 눈길까지 우리 사회는 학문과 교육을 숭상하는 민족답게 좀 더 배운 이들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배울 만큼 배웠다는 대통령이라는 자가 국민의 기대를 배반하여 불법계엄을 선포하고 계엄법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려고 무장한 군인들을 동원하여 국회의원들을 납치하려고 하는 현장이 사실 여부를 따질 것도 없이 전 국민 앞에 생중계되었음에도 여론을 조사하듯 판단을 저울질하는 언론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나라에서 좋은 대학을 만들어 국민의 세금을 투자해서 저렴한 학비로 인재들을 가르치면 뭐하는가. 그 대학에서 공부해서 박사가 되고 교수까지 된 어떤 선생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으로 끓어오르는 국민의 목소리를 광기의 바다, 눈먼 파도로 비유하여 내란수괴의 편을 들며 느닷없이 국민의 뺨을 올려붙이지 않는가. 또 그 최고라는 대학에서 법을 공부시켜 판사 검사를 지내게 한 자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정치인이 되어서, 총을 쏘고 도끼로 문을 부수어서라도 국회에서 의결 못 하게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던 대통령의 명령이 탄핵 사유가 안 된다고 TV에 나와 부끄럼 없이 떠드는 꼴을 국민은 심장에 총알을 맞는 기분으로 지켜보아야 하지 않는가.

언론사에서 시인에게 지면 한 귀퉁이를 헐어 글 한 자락을 맡기는 까닭은 백가쟁명으로 떠드는 뻔한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무한궤도처럼 굴러가는 자본주의의 속도전 속에서도 독자들이 잠시 머리 식힐 언어의 뒤뜰을 마련하라는 뜻일 테지만 고 김지하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빌려 답하자면,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김지하 ‘오적’中)

시인의 삶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린 시절 읽었던 이 구절은 시를 쓰는 자로 사는 내내 하나의 지표로 각인되어 내 펜을 추동하였다.

그러니 드라마로 국민에게 받은 사랑을 계엄에 맞춰 산하 대학을 봉쇄하는 것으로 보답하는 장관의 문화체육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밥줄이 끊기고 글을 쓸 지면이 사라지더라도 할말은 해야하고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하는 것이 글 쓰는 자의 도리가 아닌가. 윤석열 정부 블랙리스트에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이 어쩌면 작가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 시 ‘오적’에서 말하는 다섯의 도둑들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말한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국민들의 피흘림으로 세우고 지켜낸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리고 5·16쿠데타처럼 12·12쿠데타처럼 되돌리려고 하는 12·3 불법계엄 시대에 오적은 누구인가. 누가 죄인인가.

/이원석 시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