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 중심의 독서계획은 지양하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느냐가 중요

변증법적 독서로 생각 폭 확장하고

순례자 천천히 걸어가듯 책 읽어야

책고집 독서모임, 문 항상 열려있어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연초 언론과 SNS를 뒤덮은 키워드는 계엄과 탄핵, 체포영장, 내란, 내전, 구속, 조기 대선 등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치권이 되레 국민을 볼모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불안하고 무섭다.

이토록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권과는 달리 평범한 국민은 소박하게나마 새해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덕분에 우리 아직 살아있음을, 아직은 절망을 이야기할 때가 아님을 확인한다. 언제나 그렇듯 국민 개개인의 관심은 거창하거나 화려한 데에 있지 않다.

다만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고, 무탈하게 일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꿈꾸고, ‘텍스트힙’(Text Hip)을 외치며, 한해의 독서계획을 세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새해 다짐이다.

내 관심사는 그중 독서계획이다. 그와 관련해서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1년에 몇 권의 책을 읽겠다는 식의 독서계획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권수 중심의 다짐은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설령 목표에 도달하더라도 독서 본연의 의미에 부합한다고 보기 힘들다. 중요한 건 몇 권의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느냐이기 때문이다. 참고할 만한 책들이 있어 소개한다.

‘텍스트(책)는 우리가 그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너’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독서를 원한다면 변증법적 독서(dialectical)를 해야 한다. 변증법적 독서란 소크라테스적 요소와 대화적 요소가 ‘역사-철학적’ 요소와 결합된 독서를 말한다’.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반비 펴냄)에 나오는 말이다. 변증법적 독서라는 말이 다소 어렵다. 풀어보면 ‘천천히 읽기’를 통해 생각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독서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천천히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생각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으며 저자와 대화하듯(소크라테스적 요소), 텍스트를 분석하고 사색하며(역사-철학적 요소) 읽는 걸 의미한다.

‘단단한 독서’(유유 펴냄)의 저자인 에밀 파게 역시 천천히 읽기의 미덕을 강조한다. 느리게 읽으면 책에서 받은 첫인상에 속지 않게 되고, 자신을 몰각해 버리는 일이 없으며, 게을러지지 않을뿐더러, 읽어야 할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거다.

책의 극히 일부분만 읽고 마치 그게 책의 전체 내용인 양 으스대는 행위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철학자 니체는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써먹기 좋은 것만 끄집어내어 훔치는 이를 일러 최악의 독자라 부른다(‘니체의 말’에서). 최악의 독자는 책과 저자를 모독하는 사람이다.

세계적인 독서가 로베르토 망구엘은 ‘은유가 된 독자’(행성B 펴냄)를 통해 독자의 유형을 은유한다. 그에 따르면 독자는 순례자(여행자)와 은둔자, 책벌레로 나뉜다. 단테와 아우구스티누스가 대표적인 여행자 유형이고,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은둔자 유형이다. 책벌레 유형도 다채롭다. 돈키호테와 안나 카레니나가 그런 경우다.

한편, 책벌레란 좀벌레가 책을 먹어 치우는 것처럼 닥치는 대로 읽는 사람을 뜻한다. 망구엘이 권하는 독서는 순례자 유형이다. 목적지를 향해 성급하게 내달리는 독서가 아니라 순례자가 천천히 걸어가듯 책을 읽는 것이 최고라는 얘기다. 망구엘 역시 천천히 읽기를 권하고 있는 셈이다.

인문공동체 책고집에선 지난해부터 특별한 책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소설가 서유미(소설집, ‘밤이 영원할 것처럼’ 펴냄)와 함께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작품읽기’(노수작)와 성균관대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와 함께하는 ‘과학책 읽기 모임’(책범클럽)이다. 7년째 인문학 강좌와 과학 강좌를 고집스럽게 진행해온 인문공동체 책고집에서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독서 모임들이다. ‘노수작’과 ‘책범클럽’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