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택배 사업장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국회 청문회가 21일 열린 가운데, 쿠팡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불참하면서 ‘반쪽 청문회’에 그쳤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날 청문회 증인으로 강한승 쿠팡 대표,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대표, 정종철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표 등이 참석했으나 함께 증인으로 채택된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를 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쿠팡은 노동자들을 부품으로 생각하는지 동반자로 생각하는지 (사회적) 합의를 피하고 소송을 질질 끌고 온 전형적인 쿠팡의 문화를 보면 알 수 있다”며 “김 의장이 불출석하는데 다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음에 출석 요구할 때 반드시 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도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트럼프 취임식은 가고 청문회는 나오지 않느냐”며 “오늘 청문회가 효용이 있는지, ‘맹탕’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를 (이렇게) 무시하고 청문회를 대하는데 동행명령장 얘기도 있으나 (이에 앞서) 고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청문회에 참석한 쿠팡 경영진들은 택배기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고강도 심야노동 등에 대한 일부 개선 의지를 밝혔다.
앞서 쿠팡은 지난해 12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간담회에서 연속 심야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강 대표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회적 합의안들이 나오면 성실히 이행하겠나’는 물음에 “사회적 대화를 통해 도출되는 결론에 대해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답했다. 홍용준 CLS 대표는 택배기사가 물품을 싣기 전 분류하는 작업이 과로와 무관치 않다는 의견에 대해 “현장 종사자 의견을 수렴해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쿠팡 일산캠프에서 일하던 송정현(택배 기사) 지회장이 캠프에서 노조 소식지를 배포하는 등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쿠팡 업무 입찰에서 배제한 데 대해서도 사과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송 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홍 대표는 “대법원 결정 취지를 존중한다”며 “입찰 제한 때문에 장기간 피해를 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보상을 계획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에 나온 송 지회장은 “입차 제한을 받은 지 오늘로 590일이 됐다”며 “쿠팡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고 구역 복귀시키겠다는 것을 정작 당사자는 모르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 직접 약속을 들을 수 있느냐”고 요구했다.
홍 대표는 이에 “입차 제한으로 피해 보신 부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복직 부분에 대해서는 영업점과 상의해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한편, 전날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쿠팡CLS 야간 종사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CLS로부터 일감을 받는 특수고용직 야간 배송기사(767명) 중 77%가량이 ‘3회전 배송’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3회전 배송은 기사가 물품을 인수하는 캠프와 구역을 세 번 왕복하는 형태로, 현장 과로의 대표 요인으로 꼽혀왔다. 지난해 쿠팡 새벽배송 기사로 일하다 남양주에서 숨진 정슬기씨도 이러한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다.
/조수현·권순정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