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투쟁, 오랜기간 공권력과 충돌

외투기업 ‘먹튀’ 행태·구조문제 조명

尹 구속 과정서 드러난 이중적 태도

법에 대한 국가 책임 부실함 드러나

약자 외면하지 않는 국가 볼수 있길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일제강점기, 평양 을밀대에서 임금 삭감에 맞서 싸웠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고공농성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깊은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녀의 투쟁은 단지 개인의 생존권을 넘어서, 모든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집단적 목소리였다. 90여 년이 지난 2024년 1월, 경북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박정혜와 소현숙 두 노동자가 사측의 공장 폐쇄와 고용 승계 거부에 맞서 불타 폐허가 된 공장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니토덴코 그룹이 2003년에 설립한 외국인투자기업으로, 구미시로부터 무상 임대와 세제 감면 혜택을 받아 약 20년간 운영되었다. 그러나 2022년 화재 이후 회사는 공장을 재건하지 않고 폐쇄를 결정했고, 생산 물량과 운영을 평택 공장으로 이전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위로금을 받고 퇴사했으나, 박정혜와 소현숙을 포함한 17명의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남았다. 사측은 이를 거부했고, 두 노동자는 공장의 옥상으로 올라가 1년이 넘는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고공농성은 단순한 해고 철회를 넘어, 외투기업의 ‘먹튀’ 행태와 노동자의 권리 보호라는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약 7조원의 매출과 6조원 이상의 배당금을 본사로 송금한 기업이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피해를 외면하며 철수한 이번 사례는 법과 제도에 대한 국가 책임의 부실함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부실한 노동 정책이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책임지지 않는 기업 환경을 방치했고, 노동자를 가장 취약한 위치로 몰아갔다. 이러한 구조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오랜기간 동안 국가 공권력과 충돌해 왔다. 강주룡의 을밀대 농성부터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크레인 농성, 파인텍 굴뚝 농성에 이르기까지, 공권력은 종종 노동자들의 요구를 억압하거나 강압적으로 대응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 당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 벌인 309일간의 농성은 공권력이 노동자의 생존권과 권리를 어떻게 대했는지, 국가와 기업의 권력이 결탁하면 노동자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다시금 환기시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2·3 계엄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과정은 권력 남용을 단죄하는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공권력이 권력자에게는 얼마나 주저하고 머뭇거릴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공권력이 권력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인 노동자에게는 가차 없이 엄격하다는 모순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이러한 모순은 국가 권력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제 박정혜와 소현숙의 고공농성은, 국가와 공권력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요구한다. 일제강점기 원산총파업,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크레인 농성, 파인텍 굴뚝 농성 등은 모두 노동자의 생존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투쟁이었다. 강주룡이 하늘 위에서 외쳤던 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요구였다. 박정혜와 소현숙의 고공농성 역시 개인의 생존권을 넘어 기업과 사회에 책임을 묻고 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이 투쟁의 역사는 노동자가 그들의 권리를 위해 어디까지 고통받고 희생되어야 하는지 또한 보여준다. 이제는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 과정에서 드러난 공권력의 이중적 태도는, 노동자와 권력자를 대하는 국가의 근본적인 접근 방식을 되돌아보게 했다. 법과 공권력은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 특히 약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두 노동자의 목소리는 단지 그들의 외침이 아니다. 이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공권력과 국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며,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 380일, 여전히 불타 폐허가 된 공장 옥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박정혜와 소현숙, 그들을 통해 우리가 진정한 법치와 정의를 실현하는, 노동자와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 국가를 볼 수 있길 바란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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