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정체 수십년간 시나브로
2040년 잠재성장률 0.6%까지 하락
트럼프 2.0 시대 관세전쟁 큰 변수
정치권·정책당국의 대응 수수방관
‘바텀 아웃’ 전략 조속히 수립해야
대한민국의 성장이 멈췄다. 2024년 3분기 한국 경제성장률은 2분기 역성장(-0.2%)에 이어 0.1%에 불과했다.
특히 건설투자(-2.8%)와 수출(-0.4%)이 동반 부진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OECD 회원국 평균치(0.4%)에 못 미쳤으며 중국(0.9%), 미국(0.8%)과 일본(0.3%)보다도 한참 낮았다. 12·3 계엄 사태에 따른 영향은 다음달 한국은행이 발표할 ‘2024년 4분기 및 2025년 연간 성장률’에 반영되겠지만, 주변만 둘러봐도 그 여파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조사한 ‘2025년 국민 소비지출계획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고물가·소득감소 등의 이유로 소비지출을 축소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불확실성 심화 등으로 소비 심리가 급격히 냉각됐으며, 이는 가계소비 감소로 이어져 경기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암울한 것은 이 같은 한국 경제의 성장 정체가 수십년간 시나브로 진행된 사실이다. 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5% 내외에 달했던 잠재성장률은 초저출산 등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생산성 및 자본 투자 증가세 동반 둔화로 2010년대 3% 초중반으로 하락했고 2016~2020년 중에는 2% 중반으로 낮아진 후 2024~2026년 중에는 2% 수준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잠재성장률은 오는 2030년대 1% 초중반으로, 2040년 후반에는 0.6%까지 낮아질 전망이다. 일본이 버블 붕괴 이후 겪고 있는 ‘잃어버린 40년’이라는 장기 불황 늪에 우리나라도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50년 이후엔 제로 또는 마이너스 성장이 고착화될 수도 있다. 바야흐로 ‘피크 아웃(peak out) 코리아’, 과거 찬란했던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들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2025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는 관세전쟁을 예고한 트럼프 2.0 시대의 도래다. 중국은 시진핑 3.0 시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은 장기 불황과 국력 쇠퇴로 극우 민족주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다수 국가의 자국 우선주의 및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 약화로 인해 수출 중심 경제를 구가하던 한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 대중무역 갈등과 관세 폭탄 트라우마가 있어 우리로선 정말 풍전등화 상황이다.
이에 반해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대응은 ‘수수방관’이다. 부국강병책을 시행하고 국가의 모든 공력을 활용해 비상시국을 헤쳐나가고 국민적 화합을 도모해야 할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정 혼란을 스스로 야기하고,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을 키워나가고 있다. 저성장 늪에 빠진 국민을 외면한 채 이들은 변명만이 난무하며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꼴이 사납다. 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수립하여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레퍼리(referee)인데, 오히려 불공정한 거래를 은밀하게 수행하며 갈등을 조장하는 형국이다. 비상계엄이 휘몰아친 지난해 12월3일이 지나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글자 그대로 을씨년스럽다.
혼란이 수습되면 정부는 ‘바텀 아웃(bottom out) 대한민국 전략’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우선 기업투자 환경개선 및 혁신기업 육성 등을 통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향상하고 AI 등 미래성장동력을 확충시키는 ‘新산업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아울러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공급 둔화 속도를 완화하기 위해 일·가정 양립 등의 정책을 통해 대응하는 한편 청년, 여성 및 고령층의 생산성 제고를 위한 다각적인 정책을 수립해야한다.
특히 저성장세에 머물러 있는 한국이 다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경제력에 걸맞게 정치·사회적 선진국으로 부상하려면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화합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소외된 계층을 ‘손상익하’(위에서 손해를 보고 아래에서 이익이 되게 하라)의 자세로 보살피는 것도 국가가 기본적으로 할 일이다. 설 연휴에 정책당국자에게 목민심서 일독을 권해본다.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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