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중량급 인사’ 3명이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같은날 민주당이 영입한 정의당 인사 3명 중 배진교 전 원내대표와 추혜선 전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 인천시당으로 찾아와 고남석 시당위원장을 비롯한 당직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수도권 첫 진보구청장’ 타이틀을 갖춘 배 전 의원은 민주당으로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인천에서 재기의 발판을 다진다. 추 전 의원은 오랜 시간 정치 경력을 쌓아 온 경기도 안양을 떠나 인천에 둥지를 텄다.
조기 대선 급물살·지지율 정체 돌파 위한 ‘범진보 결집’ 행보
배진교·추혜선 전 의원은 지난 23일 민주당 인천시당 상견례에서 “민주·진보진영 단결과 민주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민주당에 입당한다”며 “민주·진보진영이 하나로 뭉쳐 정권 재창출을 이뤄내도록 작은 밀알이나마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이 정의당 출신 인사들을 영입한 배경에는 ‘조기 대선’이 있다. 12·3 계엄사태로 촉발된 탄핵 정국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과 헌법재판소의 본격적인 탄핵 심리로 이어지면서 조기 대선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보수 표심 결집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정체하자 범 진보진영으로 외연 확장을 꾀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민주당 측 설명이다.
민주당 인천시당 관계자는 “조기 대선이 펼쳐지면 배 전 원내대표를 비롯한 영입인사들이 선거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2022년 대선에서 간발의 차로 패배했던 경험을 되짚어 보면 중도 확장뿐 아니라 진보 유권자들의 지지도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친민주’ 행보에 당내 비판… “민주당 입당 정해진 일”
배 전 의원은 정의당 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하던 당시에도 민주당과의 연대를 중시한 ‘친민주계’로 꼽힌다. 지난해 22대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과 녹색당이 연합한 ‘녹색정의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당내 반발에 밀려 원내대표직을 사퇴해야 했다.
원내대표 사퇴 이후 인천 남동구을 선거구 총선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난해 3월 “윤석열 정부 심판을 위해 남동구을 선거구에 불출마한다”며 사실상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2018년 지방선거에 남동구청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선거 현수막에 문재인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내걸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의당 내에서 ‘겉은 정의당, 속은 민주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의당이 22대 총선에서 하나의 의석도 건지지 못한 채 원외정당으로 전락한 뒤 배 전 원내대표는 탈당계를 제출하고 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탈당 결정 당시부터 ‘당적을 옮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정의당 지역위원회 한 관계자는 “남동구을 불출마 당시에도 지도부와의 논의 없이 스스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무늬만 정의당이지 민주당원 같은 행보로 비판받았는데, (민주당 입당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고 본다”고 했다.
인천서 정치 활동 재개한 추혜선… 대선 열리면 진보 표심 확장 역할에 주력 전망
추 전 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인천으로 활동지역을 옮긴 것도 주목할 만한 행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추 전 의원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경기 안양시동안구을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별다른 정치 활동을 하지 않았다.
현재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 거주하는 추 전 의원이 민주당과 손을 잡게 된 것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0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윤 전 장관이 만나 정국 현안을 논의할 당시 추 전 의원도 함께 자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를 계기로 추 전 의원의 민주당행(行)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풀이된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것을 전제하면, 배진교·추혜선 전 의원은 대선 기간 민주당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대선 이후 당내 ‘정치적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차기 지방선거, 총선에서 선출직 출마 등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지역 민주당 내 한 인사는 “진보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정치 활동을 해온 인물들인 만큼 당 차원에서 진보 표심 확장에 대한 기대를 하고 영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권 교체에 기여한다면 지방선거에 출마할 기회도 열릴 것”이라고 했다.
‘인천 진보 간판’ 잃은 정의당… 내년 지방선거 명예회복 난망
배 전 의원은 조택상 민주당 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 지역위원장과 함께 수도권 첫 진보구청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둘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인천지역에서 출마해 각각 남동구청장, 동구청장에 당선됐다. 조택상 위원장은 2016년 5월 정의당에서 나와 민주당에 입당했고, 2021년 민주당 소속 박남춘 인천시장 재임 시절 인천시 균형발전정무부시장을 맡았다.
조 위원장에 이어 배 전 의원까지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인천에서 정의당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지난해 총선에서 원외정당으로 밀려난 만큼 내년 지방선거에서 반등을 노려야 하는 상황에서 배 전 의원을 비롯해 대중성을 지닌 인물들의 이탈은 정의당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인천 ‘진보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도 건강상의 이유로 정치 활동을 멈췄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내세울 간판이 사라진 상황이다.
정의당 인천시당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건강 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는 내용이 없다”며 “내년 지방선거 출마 여부나 역할에 대해서도 당내에서 논의된 내용은 없는 걸로 안다”고 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