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온실 창경궁 ‘대온실’

100년 넘게 오가는 시간 속 사람들 이야기

 

주인공 고향·집 강화 석모도 주요 배경 등장

석모도 사투리에서 전해지는 인물들의 마음

소설가 김금희의 첫 역사 장편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2024)는 지난해 영화평론가 이동진을 비롯한 많은 서평가가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장편 소설만이 구축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와 생생한 인물들, 거기에 주렁주렁 매달린 디테일들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이란 걸 새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제목처럼 1909년 건립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창경궁 대온실’을 수리하기 위한 보고서를 쓰는 이야기다. 건축사사무소에서 보고서 작성을 맡은 30대 여성인 주인공 영두는 대온실을 만들던 당시와 해방 전후, 한국전쟁 때의 역사 기록을 쫓다 결국 자신의 이야기와 마주한다.

역사 소설이나, 이 책 홍보 문구에서 얘기하듯 “부서진 삶을 수리하고 미완으로 남은 인간의 소망을 재건하는 눈부신 발걸음”에 관한 김금희 특유의 ‘마음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창경궁 대온실과 함께 소설의 중요한 배경인 영두의 고향이자 집 강화 석모도에도 마음이 간다. 이 코너의 타이틀이 ‘인천에서 산 책’인 까닭이기도 하다. 육지와 연결된 섬(강화 본도)과 또 다시 연결돼 육지와 멀면서도 가까운 섬 석모도가 어쩐지 고궁 안에 서양식으로 건립돼 이국의 진귀한 식물을 가득 품은 육지 안의 섬 같은 대온실과 닮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석모도 토박이 영두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쓰는 ‘강화 석모도 사투리’가 속속 나온다. 소설 속 이야기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다. 소설에서 강화 사투리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선 영두의 절친한 친구 은혜가 하는 말이다.

이제 서울에서 왔다고 매물 좀 보여주시겨 하면 일단 없시다 해. 딱 그 차림이 있어.

‘대온실 수리 보고서’ 21쪽

석모대교가 놓이기 전후로 서울 사람들이 땅을 보러 다닌다. 섬 토박이이면서 섬에서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운영하는 은혜는 토박이말로 서울 사람들이 동네 물을 흐린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강화 사투리의 전형적 특성으로 여겨지는 ‘-겨, -시겨, -시꺄’가 이렇게 쓰였다. 지금은 표준어의 영향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영두가 아버지와 정겹게 나누는 일상 대화도 당연히 그들의 말이 나온다.

“지금은 뭐 혼차 아닌가. 아까 아침에 아빠가 들어오는 거 보고 나 어서 오시겨 인사할 뻔했잖아. 옆집 아저씨인줄 알고.” “아부지가 낯이 없네.” “낯 없는데 어떻게 말은 하네.” (25쪽)

영두가 창경궁 옆 원서동 낙원하숙에서 머물던 중학교 시절, 서울로 유학을 떠나는 딸에게 아버지가 건네는 말도 뭉클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두는 큰 상처를 안고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몰르면 옆 사람들 적당히 따라 하고, 안 되겠시면 혼차 긍매지 말고 도와달라 그러고.” (45쪽)

“서울 가면 벨스럽게 굴지 말고 그냥 남들 허는 데로 묻어서 가. 그리만 허믄 긍맬 일이 없지.” (345쪽)

남겨지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매정하기가 쏜물 같은 년이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 30쪽

강화 말로 ‘찬물’을 가리키는 ‘쏜물’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 말이 쓰이는 시간대와 상황이 각각 다른데, 그 차디찬 ‘쏜물’의 온도는 이야기가 나아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듯하다. ‘외할머니’ ‘외삼촌’도 강화에선 ‘오잘머니’ ‘오삼춘’이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라도 예전엔 그랬다.

2017년 6월 개통 직전의 석모대교와 석모도 전경. /경인일보DB
2017년 6월 개통 직전의 석모대교와 석모도 전경. /경인일보DB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한성우 교수가 2011년 쓴 ‘강화 토박이말 연구’(인천대 인천학연구원)에선 ‘중앙과 가까운 변방’이란 지리적·역사적 특징이 강화 사투리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한성우 교수는 이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강화가 비록 섬으로 구성돼 있기는 하지만 고려의 수도인 개경 및 조선의 수도인 한양과 매우 가깝다. 고려말 몽고군의 침입 때 조정이 강화도로 옮겨지기도 하고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도 전란이 있을 때 왕실과 조정이 임시로 피난하기도 했다. 이는 강화가 수도와 가까운 동시에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자연적 조건이 결합됐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강화의 말도 이러한 역사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강화 토박이말 연구’ 21쪽)

또 한 교수는 “위치상으로는 황해도와 인접해 있어 황해도를 통해 북부 방언의 요소가 유입될 소지가 많다”며 “강화 토박이말에서는 북부 방언 요소와 충청 서해안 방언, 멀리 서남 방언에서 나타나는 요소가 발견된다”고 분석했다.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서 석모도는 그리움의 공간이면서 치유의 공간이다. 주인공 영두의 마음 속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일구고 키워낸 ‘대온실’ 같은 공간이다. 이 소설을 이미 읽은 사람이라면 강화 석모도에 초점을 두고 다시 읽어 보길 권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