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바람이 ‘늙은 상인’ 휘젓고, 번영 지키던 ‘낡은 간판’ 휘지다

 

“연휴 손님 넘쳐 돈 세기 바빴다”

1970~1980년대 호황… 뒤안길

 

20년 가까이 표류 시장 기능 상실

지금은 점포 대부분 셔터 내려

 

인천시·iH, 공영개발 보상 절차

“후련 하다가도 반신반의” 반응

인천시 동구 양키시장이 동인천역 일대의 개발로 곧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0일 양키시장에서 69년간 옷 수선집을 운영해온 이경자(86)씨가 손님의 옷을 수선하고 있다. 2025.1.30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인천시 동구 양키시장이 동인천역 일대의 개발로 곧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0일 양키시장에서 69년간 옷 수선집을 운영해온 이경자(86)씨가 손님의 옷을 수선하고 있다. 2025.1.30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침체의 늪에 빠진 동인천역 일대에 다시 한 번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인천시와 iH(인천도시공사)가 양키시장(송현자유시장) 일대를 대상으로 보상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된다면, 양키시장은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때 번영의 상징이었던 양키시장.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양키시장의 설 명절 모습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30일 오전 11시께 방문한 인천 동구 동인천역 인근 양키시장. 이곳은 과거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커피, 담배, 화장품 등을 판매하며 1970~1980년대 큰 호황을 누린 시장이다. 현장에서 바라본 양키시장은 과거의 명성은 빛바랜 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인천시 동구 송현자유시장(양키시장이  동인천역 일대의 개발로 곧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0일 대부분의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다./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인천시 동구 송현자유시장(양키시장이 동인천역 일대의 개발로 곧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0일 대부분의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다./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시장의 좁다란 골목 곳곳에는 ‘안전 제일’ 표지판과 함께 재난위험시설(D등급) 지정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2015년에 붙은 이 안내문은 거뭇한 때가 가득했다. 4명이 들어서면 가득 찰 작은 가게들 앞엔 난방용 연탄이 2~3장씩 놓여 있었고, 상점 상단에는 수십 년은 돼 보이는 간판이 위태롭게 달려 있었다.

과거 설 연휴 성수기를 맞아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붐볐던 시장은 오가는 손님 없이 썰렁했다. 점포 대부분은 셔터가 굳게 닫혀 있었고, 천장 등 시설물은 군데군데 해지고 낡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1980년부터 양키시장에서 옷 장사를 했다는 오경일(66)씨는 “돈통에 돈 넣을 새도 없이 손님이 밀려들던 시절이 있었다”며 “연휴만 되면 손님이 넘쳐 양쪽 주머니에 돈을 가득 넣고 집에 들어가서 돈 세기에 바빴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은 장사꾼도 손님도 별로 없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인천시 동구 송현자유시장(양키시장이  동인천역 일대의 개발로 곧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0일 대부분의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다./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인천시 동구 송현자유시장(양키시장이 동인천역 일대의 개발로 곧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0일 대부분의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다./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동인천역 북광장과 양키시장을 포함한 동인천역 일대는 2007년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된 이후 수차례 개발사업이 추진됐지만, 모두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무산됐다. 20년 가까이 개발사업이 표류했고, 그러는 사이 양키시장은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점점 잃어갔다.

인천시와 iH가 지난해부터 동인천역 일대를 대상으로 공영 개발을 추진하면서 양키시장은 개발에 한 발짝 다가섰다. 두 기관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양키시장 일대 토지·물건조사를 진행했고, 지난 24일 토지·물건조사 열람 내용을 담은 ‘동인천역 일원 도시개발사업 보상 계획’을 공고했다. 보상 계획이 공고된 건 동인천역 일대 개발이 추진된 2007년 이후 처음이다.

iH의 토지·물건조사 결과, 양키시장에는 1월 현재 110명이 영업 중이다. 상인 대부분은 그나마 유동인구가 있는 외곽 쪽에서 장사를 한다. 작업복 등을 판매하는 옷가게가 띄엄띄엄 문을 열었고, 골목에는 수십 년간 자리를 지킨 순대·곱창집이 오래된 단골 손님을 받고 있었다. 시장 중심부로 들어가면 옷 수선 가게가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수십 년간 옷을 고친 ‘수선 장인’으로 인천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인천시 동구 송현자유시장(양키시장이  동인천역 일대의 개발로 곧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0일 대부분의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다./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인천시 동구 송현자유시장(양키시장이 동인천역 일대의 개발로 곧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0일 대부분의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다./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이날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20년 이상 한자리에서 장사했다. 이들은 보상 소식에 후련하다면서도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40년째 장사 중인 김모(78)씨는 “돈(보상비) 받기 전까진 모른다. 이전에도 개발이 된다는 말은 계속 있었는데 지금까지 안 됐다”며 “이번에도 언제 취소(무산)될지 모르니 기대 안 한다”고 말했다. 69년간 양키시장에서 양복점·수선집을 운영한 이경자(86)씨는 “예전부터 개발된다는 얘긴 들어왔는데, 이번엔 그래도 물건조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여기 상인은 다 늙었다. 보상이 이뤄지면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루빨리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20여 년간 양키시장에서 수선집을 운영한 전규환(73)씨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비를 해야 하는 곳인데, 여름엔 물이 새고 이렇게 낙후된 상태로는 사람이 올 수가 없다”며 “시장 전체로 봤을 땐 빨리 개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40년째 순대집을 운영하는 김윤례(73)씨는 “예전엔 보상이 된다는 소리에 ‘장사해야 하는데 어떡하나’ 걱정이 됐는데, 지금은 보상이 된다니 좋다”며 “이번엔 개발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