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성·유희강 선생 맥 이어 영광
인천은 한국 사회의 중심적 위치
근대엔 수많은 문물 수입된 창구
올해 광복 80주년 맞아 기획 구상

지난달 17일 새로 임명된 김태익(67) 제43대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첫 출근길 박물관 본관 로비 위에 커다랗게 걸린 카툰 형식의 홍보 카피부터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시립박물관 마스코트 ‘인시박 할아버지’ 그림과 함께 이런 문구가 있다.
‘박물관이 좀 쉬우면 안 돼?’
지난달 23일 오후 시립박물관에서 만난 김태익 관장은 박물관 로비의 그 문구를 가리키며 “시립박물관이 가야 할 방향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며 “많은 시민이 보다 쉽게 다가올 수 있고, 질적으로 심화할 수 있는 일류 박물관을 실현하고 싶다”고 취임 소감을 말했다. 김 관장의 임기는 2년이다.
김 관장은 강화 출생으로 제물포고등학교를 나온 인천 사람이다. 서울대를 졸업해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고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이력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립박물관과는 인연이 많다고 했다.
“고교 시절에는 인천시립박물관이 자유공원(제물포구락부)에 있었는데, 그때부터 드나들었습니다. 시립박물관은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의 영향 하에, 또 그분의 훈도를 받은 석남 이경성(1919~2009) 선생이 초대 관장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던 유서 깊고 뼈대 있는 박물관입니다. 검여 유희강(1911~1976) 선생이 2대 관장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박물관의 맥을 이어서 맡게 됐다는 것에 대해 영광으로 생각하고, 중책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김 관장은 시립박물관이 쌓아 온 운영 노하우와 학예사들의 역량이 무척 인상 깊다고 칭찬하면서 “명실상부한 1등 박물관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물관 운영 측면뿐 아니라 도시 역사가 그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인천은 한국 사회의 중심적 위치를 이어왔습니다. 단군조선의 설화가 얽힌 강화도 참성단과 삼랑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고인돌, 비류백제의 미추홀 설화에 나타난 역사는 고대국가 발달사의 중추적 위치에 있습니다. 고려 시대 강화도는 명실상부하게 중앙이었습니다. 세계 문화사에 빛나는 금속활자와 고려청자의 발상지였습니다.
강화도조약 이후 인천은 한국 사회에서 세계로 열린 창으로서 역할도 했죠. 근대에는 수많은 문물이 수입되는 창구였고, 인천상륙작전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첨단 보루로서 상징성도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최고의 국제공항이고요. 이런 것들이 시립박물관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산입니다.”
제1대 시립박물관장인 석남 이경성 선생과의 인연에 솔깃했다. 김 관장은 “제물포고 정문 앞이 이경성 선생 댁이었는데, 항상 등굣길 학생들을 마주치며 검은 오버코트에 머플러를 두르고 홍예문 쪽으로 발길을 옮기던 노신사가 이경성 선생이었다”며 “이경성 선생이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내던 때 문화부 기자로 만나 교류했는데, 시립박물관장에 부임하면서 또 한번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시절 특종한 기사가 대규모 전시 기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 관장은 1993년 8월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중국 지린성 지안에서 한국 언론 최초로 고구려 고분군들의 사진을 촬영해 공개한 보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부터 이듬해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해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한 전시 ‘아! 고구려전’은 350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모아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전시다.
시립박물관에선 어떤 기획을 생각하는지 물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입니다. ‘광복 80년과 인천’이란 주제를 어떻게 구현해 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내년은 강화도조약 150년이 되는 해입니다. 강화도조약은 인천을 근대 세계와 연결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는 사건입니다. 또 한국사와 세계사가 만난 계기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인천이 추구하고 있는 글로벌 도시로서의 노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전시로 구현해 보는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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