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육·곡물 소금에 삭힌 젓갈
北실향민 고향 그리움 달래던 음식
흰 쌀밥 위에 한 뭉치 올려 먹으면
느껴지는 척박한 함경도 생존 의지
이젠 속초에나 가야 즐길 수 있어
임시 공휴일이 더해져 달콤하게 길었던 설 명절 연휴는 끝이 났다. 명절이면 누구든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고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고향을 갈 수 없는 이들도 있다. 고향이 북쪽인 실향민들이다. 전후(戰後) 세월이 꽤 흘렀다. 이제는 고향보다 하늘로 향한 실향민들이 더 많다. ‘고향 생각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라는 가수 강산에의 노래가 말하듯 실향민들은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외할머니도 실향민이었다. 함경도가 고향이었던 할머니가 그리움에 즐겨 드셨던 음식은 가자미식해였다. 가자미식해는 실향민들의 시름을 덜어내는 음식이다. 식해(食醢)라고 말하면 대부분 사람은 식혜(食醯)라고 생각한다. 해(醢)는 젓갈이라는 뜻이고, 혜(醯)는 식초라는 뜻이다. 해와 혜는 발음도 비슷하고 한자 구분도 쉽지 않다. 그래서 해와 혜의 정확한 한자 구분은 조선시대 서당 훈장의 실력을 파악하는 가늠자였다.
식해는 어육과 곡물을 소금으로 절이고 삭힌 젓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도의 가자미식해가 대표적이다. 가자미식해를 담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자미의 비늘과 내장을 제거하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소금에 반나절을 절이면 삼투압 현상으로 물기가 나온다. 물기를 제거하고 좁쌀(메조)과 고춧가루를 섞어서 초벌로 버무린다. 이후 고춧가루로 한 번 더 뒤섞는다. 그리고 생강, 마늘, 무채를 고춧가루와 섞어서 전체를 뒤버무린다. 그리고 엿기름을 약간 넣는다. 엿기름은 단맛보다는 잘 삭히는 용도이다. 이 상태로 2~3일이 지나면 가자미와 무에서 즙이 빠진다. 이때 다시 전체를 뒤버무려 3~4일을 더 삭히면 완성된다.
흰 쌀밥 위에 잘 익은 식해 한 뭉치를 올려 먹으면 척박한 함경도 사람들의 생존 의지가 느껴진다. 함경도는 산악 지형이어서 식재료가 많지 않다. 그런 환경에서 가자미식해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좋은 반찬이었다. 밥이 없더라도 식해는 제 역할을 다한다. 매콤한 좁쌀 양념에 꼬들꼬들한 살점이 무조각과 한 데 어우르면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그런데 요즘 시중 음식점에서 가자미식해를 먹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자미식해를 단품 메뉴로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이북 음식 전문점인 ‘능라도’ 정도에서만 먹을 수 있다. 전에는 인사동의 ‘툇마루’에서 전통 가자미식해를 맛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메뉴에서 사라졌다. 그 이유를 물으니 “힘들어서”라고 답했다. 가자미식해는 이제 속초에나 가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먹거리이다. 속초중앙시장의 식해는 단맛이 강하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엿기름을 많이 넣은 것 같다. 속초시장의 가자미식해는 달지만, 어육이 풀어지지 않아 푸석하지 않고 쫄깃한 식감을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의 실력이 깃들었다는 뜻이다.
10년 전쯤 베이징에 갈 기회가 있었다. 우연히 들른 북한 음식점에서 가자미식해를 주문했다. 섞박지 크기의 무가 듬뿍 들어갔고 가자미의 살덩이도 큼직했다.
‘고향 생각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라고 하셨던 강산에의 아버지는 쓰디쓴 소주 한 잔과 곰삭은 가자미식해 한 점으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달랬을 것이다. 가자미식해는 실향민의 그리움을 어루만지는, 함경도의 영혼 음식이다.
/조용준 경제학박사·수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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