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정치권, 수습보다 진영 대결 몰두
한국갤럽 1월 7~9일 실시한 설문
국힘 지지층 절반 이상 헌재 불신
법치주의보다 정치적 논리 휘둘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을 놓고 여야 진영 간 다툼이 헌법재판소마저 반으로 쪼개 놓고 있다. 지난해 12월14일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정치권은 탄핵 국면 수습에 대한 고심보다 진영 간 대결에 더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여파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과 헌법재판소까지 이념의 잣대에 따라 절반으로 쪼개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구속 영장 청구와 발부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지지층, 탄핵 찬성하는 쪽은 ‘너무나 당연한 결정’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국민의힘과 지지층, 탄핵 반대층은 ‘민주당의 압박을 받은 좌파적 결정’으로 주장하고 있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진영 간 골의 깊이가 500m 정도였다면 지금의 진영 간 골의 깊이는 5만m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 5만m이상이면 에베레스트 산을 6개나 겹쳐 놓을 정도의 깊이다. 이념 간 대결 구도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추세는 여론조사로도 확인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지난 1월7~9일 실시한 조사(전국1천4명, 무선가상번호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16.3%,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 여부’를 물어보았다. 법원에 대한 신뢰 여부를 물어본 결과 ‘신뢰한다’는 의견 46%,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4%로 팽팽했다. 법치 사회의 최후 보루라고 일컬어지는 법원의 신뢰도가 채 절반이 되지 못하는 결과다. 더 심각한 점은 이념 지형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민주당 지지층은 ‘신뢰’ 의견이 57%로 나온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은 ‘불신’ 응답이 61%로 정반대였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이뤄지고 있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 여부를 물어보았다. 전체적으로 ‘신뢰한다’는 의견이 57%,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31%로 나왔다. 전반적으로 신뢰 의견이 높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지지층별로 분석하면 확연히 다르다. 민주당 지지층은 헌법재판소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80%로 압도적이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은 절반 이상인 55%가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시점이 1월 초였으므로 최근 헌법재판소에 대한 진영 간 인식을 감안하면 불신 여론은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법부마저 이념의 잣대로 반반씩 쪼개진 셈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측은 지난 1일 “재판부의 권위와 재판이 공정하다는 신뢰는 내부에서 문제없다고 강변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해 정계선·이미선 재판관에 대해 회피 촉구 의견서를 제출했다. 3명의 헌법재판관에 대해 이념적 성향, 그동안의 처신, 가족 관계 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라는 시민단체는 3일 윤 대통령 측이 지목하는 문형배·이미선·정계선 헌법재판관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한편 민주당은 헌법재판관 논란에 대해 ‘무책임한 음모론 선동 정치를 중단하라’며 촉구하고 나섰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민의힘의 헌재 흔들기는 위험천만하다”며 비판했고, 이건태 대변인은 회피 촉구 의견서를 낸 윤 대통령 측을 겨냥해 “‘법꾸라지’를 넘어선 신종 ‘법 불복 전략’”이라고 쏘아붙였다. 민주당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이 누락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헌법재판관 8명 중에서 기각 대 인용이 각각 4명씩 나누어지고 난 이후 이념 논쟁은 더욱 불을 뿜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 여부를 확인하더라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반 여부, 정치적 이념 성향이 무엇인지 여부에 따라 헌법재판소와 법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법치주의에 근거하기보다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며 더 쪼개질 것으로 우려된다. 무섭다. 더 격화되기 전에 봉합하고 회복해야 한다. 누구보다 이 봉합과 회복에 나서야 될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진영 간 대결 심화로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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