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증세, 알고 나서부터 마음이 급해져

감별검사 병원은 안내만 있을뿐 도움 없어

소규모 요양원行, 어머니 상태 더 나빠져

직접 겪은 현실은 정책 홍보와 많이 달라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

올해 94세인 어머니가 치매 증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진즉에 조짐이 있었겠지만 따로 떨어져 사는 터라 눈치채질 못했다. 알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급해졌다. 마침 거주지가 전국 최초로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된 곳이다. 전화로 방문일자를 잡은 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센터를 방문했다. 1단계 선별검사(CIST)를 한 센터직원은 2단계 진단검사 시간을 잡아주었다. 매주 한 차례 센터에서 협약병원의 담당의사로부터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일주일 뒤 진단검사를 실시한 신경과 전문의는 치매가 의심되긴 하나 병원에서 자세한 검사를 받기를 권했다. 3단계인 감별검사에선 뇌 영상촬영과 혈액검사 등을 하는데 여기서부터는 의료수급자가 아니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한다. 금액의 크기를 떠나 이 단계에서 접는 이도 있겠구나 싶었다. 넌지시 일러주는 ‘고가’의 약값도 부담으로 작용함직하다.

어머니는 콩팥 이상 소견까지 나와 오후에 CT를 또 찍었다. 신장 기능 저하가 인지장애를 불러올 수도 있으므로 신장의 호전 상태를 확인한 뒤 치매 진단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꽁꽁 숨어있는 여성 탈의실을 찾아내지 못해 장애인용 화장실에서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에게 환자복을 갈아입히느라 진땀을 뺐다. 안내만 있을 뿐 도움은 없었다. 그렇게 병원 위아래 층을 오르내리며 긴 하루를 보냈다.

약을 복용하며 다음 진료일을 기다리던 중 어머니가 넘어지시면서 대퇴부에 미세한 골절상을 입었다. 근처 응급실로 이송된 어머니는 다행히 6주 뒤 퇴원하게 됐으나 당분간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태였다. 24시간 돌봄의 손길이 필요해졌다. 집으로 모실 수도 없는 사정이었으므로 요양원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의식이 흐려질 때마다 집에 언제 가느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요양원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가정과 같은’ 생활환경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공동생활가정 형태의 어느 소규모 요양원을 찾았다. 방문요양보호사의 추천도 있었고, 주야간보호센터도 겸하고 있다고 해서 맞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게 됐다. 사례마다 다르겠지만 어머니의 경우엔 그랬다. 매우 어정쩡한 형태의 시설 이용과 그로 말미암은 적절치 못한 관리로 어머니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2주만에 다시 입원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있는 인맥과 닿는 연줄을 죄다 동원해 공식적인 평가로나 입소문으로나 괜찮다는 요양원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놓긴 했었다. 하지만 결국 두 번째 퇴원을 며칠 앞두고서야 급하게 현장을 둘러보고 한 곳을 택하게 됐다. 의지할 데라곤 아들 하나뿐인 어머니는 마지못해 동의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몸이 좀 나아지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리라 믿고 계실 것이다.

직접 겪으며 치러내는 현실은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 붙어있는 정책 홍보나 슬로건과 많이 달랐다. 오늘도 누구는 또 겪었을 명백한 사실이다. 홍보 내용이나 구호는 매끈하나 실제 작동은 거칠더라는 얘기다. 검사의 단계를 더 줄일 순 없는 걸까. 꼭 협약병원을 이용해야만 하는 걸까. 돈이 없거나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도 이런 제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 요양 현장에서 돌봄과 방치의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시스템의 지침대로 따라가는데 왜 매번 사소한 마무리는 개인의 몫이 되어야 할까. 그토록 훌륭한 시스템 안에서 매뉴얼(manual) 그대로의 과정과 절차를 거치는 동안에도 의문과 궁금증은 끊이질 않았고, 혼자 뱉고 지워버리는 질문은 계속됐다.

잘 만들어진 시스템과 잘 움직이는 시스템은 다른 개념이다. 잘 만들어졌다고 해서 잘 움직이는 건 아니다. 익숙해져서 관성(慣性)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의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하는 건 매 순간 그 시스템에 가해지는 사람들의 힘이다. 그 힘의 양과 질에 따라 시스템 작동의 결은 달라진다. 어머니의 요양원 입소 과정이 그 힘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게끔 했다.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