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제한, 근로시간 줄었지만
2015년 법 제정후 여가는 늘지않아
이를 수익활동으로 활용 N잡러 증가
어쩌면 ‘카지노 자본주의’ 좇기 때문
일상 이렇게 채운다면 무엇이 남을까
2015년에 제정된 ‘국민여가활성기본법’이 올해로 10주년이 된다. 이 법의 목적은 자유로운 여가활동 기반을 조성하여 국민이 다양한 여가활동을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여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여서 일과 여가의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는 것이 기본이념이다.
여가생활의 기본 조건은 여가시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하는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이 법이 제정되기 전인 2014년에 평일 여가시간 평균은 3.6시간, 주말 여가시간 평균은 5.8시간이었는데, 2023년에는 평일은 3.6시간, 주말은 5.5시간이다. 지난 10년간 여가시간은 늘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동시간은 어떨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을 보면 우리나라는 2014년에 2천76시간으로 OECD 평균 1천786시간보다 308시간이 더 길어 하루 8시간 노동으로 환산하면 38.6일을 더 일했다. 2023년에 우리나라는 1천872시간으로 OECD 평균 1천742시간보다 130시간이 더 길고 하루 8시간 노동으로 환산하면 16.25일을 더 일한 셈이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지난 10년간 178시간 줄었다. 이런 감소는 2018년에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휴일 포함 최대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한 덕분이다.
그런데 노동시간 감소가 왜 여가시간 증가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개인의 노동시간이 감소하여 ‘명목적’ 여가시간은 증가했어도, 여가시간에 경제적 수익 활동을 함으로써 주관적으로 인식한 ‘실재적’ 여가시간이 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는 대졸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취업 직후부터 4년여 기간 동안 노동과 여가생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면접조사를 하였다. MZ세대답게 이들은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과 칼퇴근을 강조했지만, 여가시간에 근로소득 외에 기타 소득을 올리는 활동에 점점 더 시간을 쓰고 있었다. 주식, 코인, 부동산 투자 방법을 학습하거나 취미활동으로 블로그나 유튜브를 운영해서 수익을 창출하려고 하였다. 여가시간을 수익 활동으로 활용하는 현상은 최근 N잡러(여러 개 직업을 가진 사람) 규모의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 통계청이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작년 2분기 부업을 한 적이 있는 취업자가 월 평균 67만6천명이었는데, 이것은 2014년 이후 모든 분기를 통틀어 최고치였다.
노동시간을 제외한 여가시간에 다시 수익활동을 하는 현상이 증가하는 것은 현재 국가 경제와 민생이 어려워진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단지 이것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우리가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가 말한 ‘카지노 자본주의’를 좇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추카토는 ‘가치 창조(value creation)’와 ‘가치 착취(value extraction)’를 구분하는데, 가치 창조는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이며, 가치 착취는 자원을 이전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 경제 시스템은 가치 착취가 가치 창조라는 가면을 쓰고 부를 착취하기 쉽게 만들었고, 개인은 삶의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가치’를 창조하는 데에 힘쓰기보다는 ‘가격’, 이른바 주가로 표현되는 수치만 치중하게 만든다. 이런 카지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의 가격을 알지만 어떤 것의 가치도 알지 못하는” 냉소적인 사람이 된다고 마추카토는 경고하였다.
노동시간을 제외한 여가시간조차 수익활동으로 점차 채워간다면 내 삶의 모습과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 일상과 일생의 대부분 시간을 이렇게 채워나간다면 무엇이 남을까? 여가시간에 삶의 의미와 자기 노동의 가치를 환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현서 아주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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