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서화 특별전 作 ‘국화 감상’에

조선인 도장… ‘안기’ 선생 소장품

청나라서 활동한 조선인 후예로서

中 4대 서화감정가, 동양미술사 중요

묵연 좇아 한걸음 또다른 인연 기대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미술사 조교수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미술사 조교수

2월의 첫날, 중국 명대 서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경기도박물관을 찾았다.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기대됐지만, 사실 그곳에서 ‘그분’의 흔적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설레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펴보던 중 좌우로 긴 두루마리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그 작품은 명나라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심주(沈周, 1427~1509)의 ‘국화 감상’(원 제목은 ‘분국유상도’(盆菊幽賞圖)이었다. 화분에 심은 국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예부터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이 되면 국화가 익는 계절이라고 해서 국화를 감상하거나 국화주를 마시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국화꽃과 아직 푸르름을 간직한 정원, 울긋불긋 물들어 가을을 예견한 수목들, 초가지붕의 정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세 친구의 모습이 담담한 필치와 어우러져 정겹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림 자체보다는 두루마리 끝에 찍힌 붉은 인장(도장)이었다. 여기에 ‘조선인’(朝鮮人)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중국 그림에 조선사람의 도장이 찍혀 있다니? 호기심이 일 수도 있지만 이내 깨달았다. 이 인장의 주인이 바로 필자가 찾고자 했던 ‘그분’, 안기(安岐, 1683~1746)라는 사실을 말이다. 안기는 청나라에서 활동한 조선인의 후예로 그의 선조는 병자호란 즈음 중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톈진과 양저우에서 소금매매업을 통해 거상(巨商)의 위치에 올랐고 수백점의 서화를 모은 중국 최대의 컬렉터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손을 거친 수많은 작품들은 현재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대만 고궁박물원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흩어져 있으며 동양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동시대인들에게 안기는 단순히 작품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관찰력과 감식안을 바탕으로 정밀한 감상평을 남긴 것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그는 항원변(項元抃, 1525~1590), 양청표(梁淸標, 1620~1691), 변영예(卞永譽, 1645~1712)와 더불어 중국 4대 서화감정가로 꼽힌다. 재질, 장황(표구), 기법, 전래 과정 등 소장 당시 작품에 관한 정보를 세세한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참고토록 했고 무엇보다 소장자의 인장을 화면 위에 무분별하게 찍어 원작을 훼손하는 행위를 극도로 경계했다.

심주의 ‘국화감상’을 보면 안기는 자신의 가문과 자(字), 성명, 장서루(藏書樓, 서책이나 예술품 등을 보관한 장소)의 이름을 새긴 총 5과의 인장을 찍었다. 모두 그림의 귀퉁이나 바깥쪽, 두 폭 이상 연결된 지점에 인장을 찍어 원작을 해치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려한 태도가 눈에 띈다. 고서화를 모으고 감상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을 몸소 실천했다는 점에서 감상의 품격을 보여줬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말일까.

평생 중국에 살면서 청대 문화예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을뿐 아니라 자신의 소장품에 ‘조선인’ 석 자를 새긴 인장을 찍었을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안기. 실학자 유득공을 비롯해 성해응, 오세창, 최남선에 이르기까지 조선부터 근대기 학자들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그중 일부는 행적을 추적하기도 했지만 그의 이름은 어느덧 우리의 기록에서 사라졌다.

안기가 세상을 떠난 지 280년이 흐른 지금, 그가 보았던 심주의 그림을 마주하며 문득 어느 영화 속 대사가 떠올랐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만난다.” 그러나 안기에게 있어 꼭 만나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그림이나 글씨였을지 모른다. 그는 자신의 문집에서 많은 서화를 수집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묵연’(墨緣)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아마도 서화와 맺어진 특별한 인연이 아니고서는 따로 설명할 길이 없었으리라. 심주의 그림을 접하고 비로소 안기가 남긴 묵연의 흔적을 좇아 또 한 걸음 다가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칼럼을 준비하면서 만나게 될 누군가와의 또 다른 묵연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미술사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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