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없이 이뤄진 촬영에 입주민 깜짝 놀라

촬영 중 일어난 소음·통행방해에 주민 불편

형식에 그친 허가 절차에 인근 주민만 피해

촬영 명소 되면 로케이션 촬영에 피해 지속

7일 오후 드라마 세트장으로 자주 쓰이는 오산시 한 폐공장 내부. 2025.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7일 오후 드라마 세트장으로 자주 쓰이는 오산시 한 폐공장 내부. 2025.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오산시 양산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30대 A씨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중증외상센터’를 보고 지난 2023년 10월을 떠올렸다. 드라마에서 건물 내 산소통이 연쇄 폭발하면서 화재로 이어지는 긴급한 사고 장면을 A씨가 거주하는 아파트와 마주한 인근 공터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당 촬영이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공지 없이 새벽 시간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날 새벽 2시 ‘펑펑’ 터지는 소리에 잠이 깬 A씨는 전쟁이 난 줄 알았다고 한다.

A씨는 “잠이 깬 상태로 초등학생 아들과 밤을 샜다. 뭔가 일이 터진 것 같은데 TV를 봐도 아무일이 없다고 하고 불안감이 컸다”고 전했다. 당일 아파트 입주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촬영이어도 이 밤중에 펑하는 소리에 놀라는 건 아닌 것 같다’, ‘펑 터지면서 창문도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등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오산의 촬영 명소로 자리잡은 폐건물들 인근에 거주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모인 카페. /독자제공
오산의 촬영 명소로 자리잡은 폐건물들 인근에 거주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모인 카페. /독자제공

이날 제작사가 관리사무소를 통해 ‘양해를 구한다’는 안내문구를 엘리베이터에 붙여놓긴 했지만 이를 아는 주민은 드물었다.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근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를 두고 관할 당국의 촬영 허가 절차가 형식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비디오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는 촬영장소 제공 등 영상산업 진흥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해야한다. 이에 지자체 소속 도로나 건물 등에서 촬영이 이뤄지는 경우 지자체가 제작사에 사전 허가를 내지만, 촬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민원을 사전에 인지하기 위한 용도에 그치는 실정이다. 촬영 과정에서 나타나는 소음과 통행 방해 등에 관해서도 ‘주의해 달라’는 권고 정도만 이뤄진다.

7일 오후 드라마 세트장으로 자주 쓰이는 오산시 한 폐공장. 2025.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7일 오후 드라마 세트장으로 자주 쓰이는 오산시 한 폐공장. 2025.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제작사와 지자체의 ‘가교역할’을 담당하는 경기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제작사는 보통 진흥원을 통해 지자체에 촬영 허가는 내는데, 물리적으로 촬영이 불가능한 지역이 아닌 이상 허가가 난다”며 “지역마다 소음이나 민원 등의 여지는 있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제작사가 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처럼 지자체의 촬영 허가 절차가 형식에 그치면서 이른바 ‘촬영 명소’로 자리 잡은 곳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A씨가 거주하는 곳의 인근 공터도 폐건물이 모여 있어 인기드라마 ‘더글로리’도 촬영하는 등 빈번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한 번 촬영 명소가 되면 로케이션 촬영이 이어지고 피해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특히 야간에 발생하는 소음은 인근 주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으니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라며 “일차적으로는 제작사의 역할이지만, 지자체도 촬영 허가를 내리는 구조인 만큼 책임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