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은 한국이라는 공간적 전제

‘한국다움·한국에 관한 연구’ 정의

연구 대상으로 낯설게 보는게 시작

현재 한국 정치 개념을 재구성하면

‘권위 획득 위한 투쟁’ 근접해보여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필자가 속해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름 그대로 한국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이다. 실제로 성남 청계산 아래 이름도 멋스러운 운중동(雲中洞)에 위치한 연구원 안에는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의지를 지닌 대학원생들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구름처럼 운집한다(구름이 늘 많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멋진 한문 필체로 쓰인 고풍스러운 간판이 걸린 건물들이 있고, 다들 열심히 연구하며, 석박사 대학원생들이 땀흘리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하니, 한국학이라는 실체가 당연히 있겠거니 지레짐작하기 쉽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한국학이라는 학문처럼 그 실체가 알쏭달쏭한 것도 없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내놓은 ‘한국학 학술용어’(2020)에 따르면 한국학은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전제로 한 ‘한국다움’에 대한 것, ‘한국에 관한 연구’라고 한다. 꽤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전히 아리송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한국문화가 ‘한국다움’으로 대체되고, 한국학을 한국에 관한 연구로 조금 풀어쓴 정도이다. 이는 어쩌면 그만큼 한국학을 간명한 언어로 포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준다.

앞으로 경인일보를 통해서 한국학이라는 범주, 한국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등을 함께 고민해볼 것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 한국학은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본질을 재확인하는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학은 한국을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서 낯설게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울을 보면서 ‘나 좀 오늘 괜찮은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생각은 자유라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낯설게 볼 줄 알아야 하듯이, 한국학에서도 그와 같은 엄청난 내공이 요구된다. 한국학은 그런 내공을 지닌 이들이 기꺼이 도전해 볼 만한 영역이다.

구체적인 사례 연습을 해보자. 정치학을 한국학적인 관점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 정치학 교과서에서 흔히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리된다. 한국학적으로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교과서적 정치 개념이 한국이라는 장소에서 얼마나 통용 가능한지를 한 번 따져보아야 한다.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는, 혹은 우리가 일상 차원에서 경험하는 한국정치에서 가치는 정말 권위적으로 배분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권위적 배분은커녕 오히려 모든 갈등이 정치화되다가,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거나 반발하는 것이 작금의 한국정치의 현실에 가깝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이 모두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정치학 교과서에서 나오는 정치 개념이 사실상 특정 사회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정당화된’ 지식에 불과하다는 불편한 진실이 보이고,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특정한 정치학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들만 정치학적 고려 대상으로 삼아왔다는 것이 비로소 레이더에 잡힌다. 가까운 우리 이웃들의 숱한 정치 이야기와 경험을 담아내지 못한 채 말이다.

이를 느끼는 것은 그나마 쉬운 일이다. 이제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정치 개념을 재구성하는 더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 볼 때 현재 한국에서 정치는 ‘권위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에 더 근접해 보인다. 이 투쟁은 역사적으로 폭력(violence), 힘(force), 가치와 이념 등이 결합하면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한국의 정치에 늘 끼어드는 여러 외세까지 생각하면, 한국의 정치는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학은 세계의 다른 그 어느 국가에도 잘 없는 전공인 ‘정치외교학과’라는 이름으로 연구되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치 개념이 한국에서만 한국학적으로 통용되는 특수함일까. 도리어 몇몇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세계 대다수 나라들의 정치가 여기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한국이라는 장소에 한국학적으로 질문을 던지면 역설적으로 더 넓은 차원의 고민을 만난다. 이게 한국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이 지닌 묘미일 것이다.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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