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화재 속 60여마리 중 일부 사망

법 개정 후 20마리 이상 보호시 신고하지만

시설 아닌 거주 공간 이유 관리·감독 벗어나

2002년부터 반려견들과 함께 살아왔다는 A씨는 6년 전 화성시 남양읍의 한 비닐하우스에 터를 잡고 반려견 60여마리를 기르며 함께 살고 있다.2025.2.9 /목은수기자wood@kyeongin.com
2002년부터 반려견들과 함께 살아왔다는 A씨는 6년 전 화성시 남양읍의 한 비닐하우스에 터를 잡고 반려견 60여마리를 기르며 함께 살고 있다.2025.2.9 /목은수기자wood@kyeongin.com

“(애들이) 낯선 데로 가면 그것만큼 불쌍한 게 없어요.”

화성시 남양읍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만난 60대 A씨는 족히 50마리는 넘어 보이는 반려견에 둘러싸인 채 이렇게 말했다. A씨가 반려견 수십마리와 함께 사는 이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물과 사료, 연탄 등 각지에서 보내온 택배 물품은 정돈되지 않은 채 널려있었고, A씨를 따라다니는 반려견들은 비좁은 공간에 뒤섞일 때면 서로 물어 ‘낑낑’ 소리를 내기도 했다.

불과 닷새 전 A씨가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 내 샌드위치패널 가건물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반려견 7마리가 죽고 A씨도 다쳤다. A씨는 새까맣게 탄 채 무너진 가건물 잔해를 그대로 두고 새로 설치한 텐트 안에 이부자리를 펴 놓고 반려견들과 살고 있었다.

A씨와 A씨의 반려견을 위해 보내진 택배 물품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어지럽게 널려있다. 비닐하우스 밖으로 반려견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철장이 설치돼 있지만 일부 반려견은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2025.2.9 /목은수기자wood@kyeongin.com
A씨와 A씨의 반려견을 위해 보내진 택배 물품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어지럽게 널려있다. 비닐하우스 밖으로 반려견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철장이 설치돼 있지만 일부 반려견은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2025.2.9 /목은수기자wood@kyeongin.com

6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A씨는 “2002년에 수원에서 강아지 2마리와 함께 살기 시작한 게 처음”이라며 “개를 기른다는 걸 알고 일부러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개장수에게 죽여지기 직전에 안타까워서 구입하기도 하면서 점차 늘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보호소로 보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거기는 가면 다 죽이는 곳”이라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최근 동물 복지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동물을 보호하면 지자체에 신고하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A씨처럼 단순히 많은 수의 반려견을 기르는 경우는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개와 고양이 등의 보호동물을 20마리 이상 키우는 경우 일정 수준의 시설과 운영기준을 맞춰 2026년까지 관할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그동안 민간 동물보호소가 열악한 환경에서 지나치게 많은 동물을 방치하는 문제가 제기되자 제도권 내에서 시설을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4일 화재로 주 생활공간이던 가건물이 전소된 이후 A씨는 임시로 마련한 텐트에 이부자리를 마련해놓고 연탄 난로에 기대 반려견들과 지내고 있다. 2025.2.9 /목은수기자wood@kyeongin.com
지난 4일 화재로 주 생활공간이던 가건물이 전소된 이후 A씨는 임시로 마련한 텐트에 이부자리를 마련해놓고 연탄 난로에 기대 반려견들과 지내고 있다. 2025.2.9 /목은수기자wood@kyeongin.com

그러나 A씨처럼 유기동물 보호나 입양 등의 목적이 아닌 반려동물을 자신의 사육 능력 이상으로 기르는 애니멀호더는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 본인이 동물을 돌보기 위해 마련한 공간일 뿐 보호 목적의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성시 관계자는 “불이 난 이후 견주를 설득해 반려견 9마리를 보호센터로 보냈지만, 나머지는 본인이 키울 수 있다고 완강히 거부해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이전부터 인근 농가에서 민원도 있던 곳이지만, 관리 대상인 보호소도 아니고 사유지인 데다 반려견도 개인 소유물에 해당해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신주운 동물권행동카라 정책변화팀장은 “20마리 이상 길러 신고하는 건 사업장에 한정되지만, 동물 복지 목적의 법 개정인 만큼 적용의 여지는 남아있다”면서도 “업자가 아닌 반려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엔 동물 미등록으로 과태료를 매길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동물 수를 줄여나가도록 유도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