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정약종·정하상은 부자관계

아버지 약종 ‘주교요지’ 등 남겼고

아들은 김대건 신부 탄생 장본인

어머니·여동생도 순교, 성가정 표본

곧 봄날… 성지순례지 걸어볼까요

한국천주교회의 요람 마재성지 안 한옥성당. /최철호 소장 제공
한국천주교회의 요람 마재성지 안 한옥성당. /최철호 소장 제공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입춘 지나 우수로 향하니 얼었던 한강도 서서히 녹는다. 요 며칠 강추위에 한강이 꽁꽁 얼었다. 눈이 쌓이고 칼바람이 몰아쳐 강과 산도 꼼짝 못했다. 하지만 이젠 햇살이 좋다. 봄 햇살에 카메라를 메고 교외로 나선다. 해 뜰 무렵 햇빛이 비치어 반짝이는 한강 물결이 정겹다. 햇살에 비친 한강은 은빛 물결과 금빛 물결이 섞여 외롭지 않게 흐른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지만 봄기운이 숨어 있다. 팔당대교 지나 천진암 가는 좁은 찻길에 사진작가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려댄다. 어디를 향하는 걸까?

속도를 늦추며 같은 곳을 응시해 본다. 왜가리인지 백로인지 철새들이 반짝이는 강물 위로 날아오른다. 한강 따라 조금 더 가니 산속에 눈이 아직 남아있다. 찻길과 자전거길이 교차하는 곳에 사람도 오간다. 편의점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따뜻한 차 한 잔 마신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사이 눈에 들어온 이정표가 마음을 흔든다. 하얀 눈이 아직 남아있는 좁은 도로 위에 ‘마재성지’라 써있다. 언제가 꼭 가 보고 싶었던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직은 눈이 쌓여 있는 산기슭에 기와로 된 담벼락과 노란색 네 글자가 눈에 띈다.

광주와 남양주 사이 마재성지 앞 겨울 속 꽁꽁 언 한강. /최철호 소장
광주와 남양주 사이 마재성지 앞 겨울 속 꽁꽁 언 한강. /최철호 소장

정문 안 앞마당에 쌓인 눈 위로 주차 후 잠시 기다린다. 숨죽여야 할 듯한 분위기에 사뿐사뿐 걸어가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은다.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 마재성지 성가정(聖家庭)에 대한 글이 보인다. 단출한 한옥 지붕이 미사를 드리는 한옥 성당임을 짐작케 한다. 왠지 차분하다. 그 옆 명례방 안 성가정에 얽힌 이야기와 초상화가 벽을 따라 전시돼 있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눈길을 걸으며 담벼락 속 벽화도 살핀다. 200여 년 전 그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간다. 왜 성가정이라고 했을까?

역사 속 정약용은 알아도 정약종은 잘 모른다. 설령 정약종이 정약용의 형인지는 알아도, 정약종이 정하상의 아버지인 줄은 아무도 모른다. 가톨릭 역사에 신유박해와 기해박해 속 순교자 중 정약종과 정하상은 부자 관계다. 심지어 1801년 신유박해에 정약종과 큰아들 정철상은 광주 마재에서 한양도성 서소문 밖까지 끌려와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이후 1839년 기해박해에 작은아들 정하상과 어머니 유선임 그리고 여동생 정정혜가 차례로 서소문 밖 칠패시장에서 순교하였다. 한 가정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가족이 살고, 순교한 천주교 특별한 성지. /최철호 소장 제공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가족이 살고, 순교한 천주교 특별한 성지. /최철호 소장 제공

광주 마재에서 태어난 정약용 형제 중 셋째 형 정약종은 가장 늦게 천주교를 접하였다. 하지만 순한글로 지은 교리 해설서 ‘주교요지’(主敎要旨)를 남기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우뚝 서있다. 또한 둘째 아들 정하상은 아버지가 떠난 후 어린 나이에도 역관의 몸종으로 심양에서 북경까지 오가며 교황청에 편지를 써 조선교구 설립의 주역이 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인 신부 김대건과 두번째 신부 최양업을 탄생하게 한 장본인이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 역사에 중요한 분으로 정하상은 1925년 복자에서 1984년 성인이 되셨다.

한국천주교의 요람인 마재성지는 복자 두 분과 성인 세 분이 있는 공간이다. 더구나 이곳에 계신 다섯 분은 모두 순교한 한 가족의 거룩한 가정이다. 마재성지는 남양주의 자랑이자 대한민국 성지순례지다. 세계적 성지순례 코스가 되기 전 봄날 함께 걸어 볼까요.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