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 난 일감에 인쇄단지 한숨

설상가상 부자재 가격 크게 올라

11일 파주 영신사에서 직원이 제본을 하고 있다. 2025.2.12 /마주영기자 mango@kyeongin.com
11일 파주 영신사에서 직원이 제본을 하고 있다. 2025.2.12 /마주영기자 mango@kyeongin.com

12일 오전 10시 찾아간 파주시 신촌동 파주 출판·인쇄단지는 한산했다. 책을 가득 싣고 쉴새 없이 드나들던 트럭도 언제 그랬냐는듯 자취를 감췄다. 인쇄소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년이 온다’ ‘희랍어사전’ 등 한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가장 많이 찍어낸 곳 중 하나인 영신사에는 한때 사람 키만한 높이로 쌓인 책들이 600여㎡(200평가량) 되는 인쇄동을 가득 채웠지만, 지금은 드문드문 놓인 책더미가 전부다.

한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종이책이 불티나게 팔린 이른바 ‘한강 특수’가 예상보다 빨리 식으면서 인쇄단지의 한숨이 깊어졌다. 일감이 반토막이 난 가운데 고물가로 생산 비용이 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공장에서 완성된 종이책을 운반하는 이모(69)씨는 “10월에는 5톤 트럭이 하루에 6~7번씩 책을 실어 날라 하루 종일 지게차를 몰았는데, 불과 몇달 만에 물량이 반토막으로 줄었다”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했다. 영업을 담당하는 문모(56)씨 역시 “노벨상 수상 당시에는 매일 생산량의 최대치인 5만부를 찍어 냈는데, 이제는 신간 발주 여러 건을 합쳐야 3만여부를 채운다”며 “베스트셀러 도서라고 해봤자 발주가 1만부 정도 들어온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까지 치솟으면서 현장의 어려움은 가중됐다. 특히 올해는 잉크, 합지 등 부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 인쇄 단가는 수십년째 그대로인 반면, 생산 비용이 꾸준히 상승해 부담이 점점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찾아온 한강 열풍이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가 무너지면서 업계의 한숨은 깊어졌다. 문씨는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지난해 12월 인쇄 2차전을 준비하며 각오를 다졌지만 지금까지 관련 발주는 감감무소식”이라며 “독자들을 위해 밤과 주말에도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는데 순식간에 관심이 줄어 아쉽다”고 말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지난해 말부터 계엄, 탄핵 등 사회 이슈가 국민들의 여가 시간을 점령하면서 독서에 대한 관심이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장 평론가는 “내수 독서 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인 만큼 수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출판단지 내 수출지원센터를 설립하는 방안 등을 지자체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주영기자 mang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