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용 지휘자의 치밀한 해석… 완성된 연주로 ‘최상급 감동’
서곡이나 협주곡 없이 구성
1~3악장 이어지며 청중 박수
아사히나 오사카 필에 ‘비견’

인천시립교향악단은 올해 첫 정기연주회를 ‘2025 클래식 에센스Ⅰ’로 꾸몄다.
지난 15일 아트센터인천(ACI)에서 열린 제429회 정기연주회에서 정치용이 지휘하는 인천시향은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유작인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2015년 8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인천시향의 예술감독을 역임한 정치용은 이날 공연에서 객원 지휘자로 단원들을 이끌었다.
서곡이나 협주곡 없이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으로만 구성된 이날 연주회는 결론부터 얘기하면 국내 단체가 구현한 최상급의 연주회였다. 작품에 정통한 지휘자의 치밀한 해석과 접근을 악장과 단원들이 적극 구현하면서 완성된 연주를 들려줬다.
브루크너 특유의 개시(開始)인 현의 트레몰로에 의한 원시무(原始霧)에 이어 금관에 의해 제시되는 1악장(장엄하고 신비롭게)의 1주제는 카리스마 있게 다가왔다. 이날 연주회를 기대하게 만드는 시작이었다. 장중하게 부풀어 오르는 메이저 시퀀스의 감흥과 함께 ‘브루크너 휴지(休止)’로 불리는 게네랄파우제 이후 등장하는 2주제의 도입도 저음현의 유장한 표현을 통해 1주제와 대비도 적절히 이뤄졌다. 1악장 코다에 들어가기 전 클라이맥스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금관의 소리가 다소 거친 감이 있었지만 감상을 저해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적절한 긴장감과 함께 악장을 마무리했다.
2악장(역동적이고 활기차게) 스케르초는 바이올린의 높은 피치카토에 이어서 야만적 리듬으로 구현되는 새로운 음악이며, 작품의 중앙에 자리한다. 총주에서 현악 주자들은 연속한 다운 보잉을 통해 강력한 음향을 구현하는데, 브루크너의 다른 스케르초에서 느끼는 변덕과 해학보다는 냉소가 지배하는 악장이다. 정치용과 인천시향은 다소 빠른 템포로 작품을 주조했다. 중간 부분의 트리오에서 민첩한 대응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잘 처리됐으며, 애절함으로 바뀌는 표정 전환도 적절했다.
3악장(느리고 장엄하게) 아다지오는 작곡가의 고별사이며 이 작품의 정점이다. 1주제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반음계적 화성과 ‘파르지팔’ 중 성배(聖杯)의 모티브를 떠올리게 한다. 이 악장에서 호른 주자들 가운데 4명이 바그너튜바를 연주하게 되는데, 인천시향의 바그너튜바 주자들은 특유의 묵직한 사운드를 잘 구현했다. 지휘자는 3악장에서도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템포는 취하지 않았다. 악장 중간의 모호한 조성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면서 불협화음으로 이뤄진 ‘절규’까지 적절히 구현했다. 이어지는 코다에서도 과장됨 없이 사라져가듯 연주했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려놓기까지 기다린 청중은 지휘자와 악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000년을 전후해서 일본의 지휘자 고(故) 아사히나 다카시와 그의 수족과도 같았던 오사카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브루크너와 구스타프 말러 등의 음악을 접하면서 부러워 했던 적이 있다. 이번 정치용과 인천시향의 연주로 그 부러움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
참고로 아사히나와 오사카 필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연주(2001년 9월 24일 실황)에서 1악장 마치고 악단이 조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번 연주에서도 재현되어서 순간 놀라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