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1년 7월 중국 지린성 창춘 만보산 인근에서 수로 공사 문제로 중국인과 조선인 농민, 일본 경찰 등이 충돌했다. 당시 국내 유력 일간지가 ‘만보산 사건’이라 불린 이 사건에 대해 조선인 농민 다수가 중국 측에 의해 피살됐다는 오보(실제 사망자는 없었음)를 호외로 냈다. 국내 과장 보도를 접하며 화교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조선인들은 평양과 인천 등 전국에서 화교를 공격했고, 전국적으로 200여 명의 화교가 살해됐다. 이른바 ‘화교배척사건’이다.
인천대학교 중국·화교문화연구소가 2021년 8월 개최한 ‘제75회 중국관행연구포럼’에선 화교배척사건과 1992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코리아타운을 휩쓴 ‘LA 4·29 폭동’을 비교한 바 있다. 두 사건의 중요한 공통점은 미디어의 정보 왜곡으로 사건이 촉발되거나 확산됐다는 것이다. LA 폭동 전후로 미국 주류 사회 미디어는 인종 차별 문제와 흑·백 갈등에 대한 시선을 돌리고자 ‘흑인과 아시아계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조명·조장했다는 게 오늘날 대체적 분석이다.
화교배척사건 또한 일본 총독부 통치에 대한 갈등과 분노를 화교로 향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당시 주요 신문 등에서 조장됐다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4년 전 포럼 내용이 이제 와서 다시금 떠오른다. 12·3 내란 사태 이후 ‘가짜뉴스’로 인한 정보 왜곡 현상의 폐해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94년 전, 33년 전 사태를 연상하게 한다.
지난 10일 인천시의회 일부 의원들은 시의회 본관에서 성명을 발표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국제기구인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가 부정선거 시스템을 해외 곳곳에 보급한다며 A-WEB의 퇴출과 수사를 촉구했다. 음모론에 기반한 성명이다. A-WEB은 즉각 공식적으로 반박하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국제기구 메카’를 지향하는 송도의 브랜드 가치와 국제 신뢰도를 시의원들이 근거 없이 깎아내린 꼴이다. 이번에도 일부 언론은 ‘따옴표(“ ”) 저널리즘’으로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겼다.
/박경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