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옥아 잘가. 그동안 큰일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97)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받기 위해 함께 힘쓴 벗 고(故) 길원옥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길 할머니는 18일 가족들과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영면에 들었다.
이날 오전 9시30분께 인천 연수구 인천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길 할머니의 발인식이 거행됐다. 길 할머니는 지난 16일 인천 연수구 자택에서 향년 97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날 발인식에서 정석원 목사는 “위안부 할머니이자 인권운동가로 두 가지 모습을 보이셨다”며 “이북 한 시골에서 태어나 위안부로 끌려간 것 외에는 남들과 다를 것이 없는 분이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러내고 자신과 같은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을 위해 이런 만행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도록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셨다”면서 “위대한 삶을 사신 분”이라고 했다.
이날 이용수 할머니도 발인식에 참석해 길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운구차 앞에서 이 할머니는 “원옥아 잘가. 이제 아픈 데 없이 잘 있어라”고 말하며 길 할머니의 관을 어루만졌다. 또 운구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길 할머니는 1998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뒤 피해 사실을 국내외에 알리는 활동을 이어왔다.
인천에 터를 잡은 길 할머니는 2004년부터 2020년까지 정의기억연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으로 거처를 옮겨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매주 참여했다. 쉼터를 나온 뒤에는 아들 가족과 함께 인천에서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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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할머니는 2012년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1926~2019) 할머니와 함께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으면 세계 전쟁 피해 여성을 돕는 데 쓰겠다며 정의기억연대와 함께 ‘나비기금’을 제정했다. 2014년엔 스위스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실을 찾아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전 세계 시민 150만여명의 서명을 건네기도 했다.
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7명만 남았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40명으로 이 중 233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들의 평균 연령은 95.7세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