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강수입 25% 관세, 포항시 난감
작년 철강 설비 가동률 67%까지 떨어져
중국에 밀린 석유화학, 여수도 업황 부진
산업화 선도한 울산, 불안한 미래 전망도

미국 제조업 르네상스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한달도 안 돼 관세폭탄을 마구 쏘아대고 있다. 국가별, 품목별, 보편, 상호관세 등 전방위적이다. 품목별 관세의 경우 적성국은 물론 동맹국에도 똑같이 부과하기로 했다. 지난 11일에 서명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의 25% 무차별 관세가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US스틸을 천조국(天朝國)의 상징으로 치부하며 과거의 영광 재현을 다짐했지만 성과는 의문이다. 한때 세계최대 철강업체이던 미국 북동부 피츠버그의 US스틸은 현재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헐값의 매물로 나왔다.
미국 수입 철강의 10%를 점하고 있는 K-철강이 관세폭탄을 맞았다. 2018년 트럼프는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제품에 관세 25%를 부과하면서 한국과 유럽연합, 영국, 캐나다, 일본 등 동맹국에는 관세를 면제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대미 철강 수출물량 중 263만t에 대해 무(無)관세 혜택을 받았는데 이번 조치로 이 혜택이 없어진 것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판단하고 있다.
포항시가 특히 난감해졌다. 유동 인구가 많아 포항의 명동이라 불렸던 북구 중앙상가 거리는 공실률이 30%에 육박한다. 포항 산업의 70%를 점하는 철강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다. 지난해 7월에는 45년 넘게 가동해오던 포스코 1선재 공장이 폐쇄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현대제철 포항 2공장도 생산을 중단했다. 호황기에는 90%에 육박하던 포항시 철강 산업 설비 가동률이 지난해에는 67%까지 떨어졌다. 포항시민들은 미국의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를 떠올리며 당혹해 하고 있다.
석유화학 도시 전남 여수의 업황도 부진하다. 여수국가산업단지는 1967년 호남정유 공장을 착공했던 삼일동 일대를 중심으로 아시아 최대의 석유화학콤비나트(3만2천550㎡)를 완성해 2023년 6월 기준 입주업체 305개에 고용인원 2만5천101명이다. 그런데 ‘유화 빅4’로 꼽히는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의 영업이익이 2022년 4조3천468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천377억원으로 급락했다. 핵심 수출시장이던 중국이 자급자족을 넘어 석유화학의 기초소재인 에틸렌 생산량을 2018년 2천600만t에서 2023년 5천200만t으로 확대해 한국제품 수입은커녕 오히려 베트남, 태국 등지에 수출을 늘리고 있다. 풍부한 원유가 주무기인 중동의 석유업체들은 생산단가가 한국 업체들의 30%인 정유·석유화학 통합공정(Crude oil to Chemicals)이란 신기술로 이 업계에 진출해 설상가상이다.
한국의 고속성장을 견인했던 비수도권 산업도시에서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 지난달 8일 한국경제신문의 발표에 따르면 2014년 초부터 올해 초까지 울산, 포항, 창원, 여수, 거제에서 순유출된 인구는 24만여 명인데 이 중 20∼39세의 청년 생산인구는 14만여 명으로 전체 유출인구의 58%다. 19세 이하 청소년을 합치면 19만여 명으로 무려 80%에 달했다. 국내에서 가장 부유한 산업도시에서 청년들의 엑소더스가 눈길을 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땀 흘려 일궈낸 노동자의 도시이자 중화학을 통해 수출주도경제로 탈바꿈시킨 한국 산업화의 선도기지인 울산시가 2030년부터는 연봉 1억원의 노동귀족과 고학력자들이 사라진 디스토피아가 될 것으로 예단했다. 2030년 이전에 국내 1위의 부자도시 울산을 지탱하던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의 정규직 근로자들이 모두 정년퇴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202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27.8%로 독일(21.6%), 일본(20.8%), 이탈리아(16.6%), 미국(11.6%), 영국(9.6%) 등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의 중추인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정유 등을 고루 갖춘 세계 6위의 제조업 강국이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때 글로벌 공급망 장애에도 한국민이 큰 불편 없이 견딜 수 있었던 것도 국내 제조업이 발달한 덕분이다.
국가경쟁력의 근간인 제조업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