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베스트셀러 ‘딱지본 소설’
화려한 표지와 이야기, 저렴한 가격
일제강점기 한글 생명력 유지 역할도
5월25일까지 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이 기획전시관에서 진행 중인 기획전 ‘100년 전으로의 초대, 딱지본 소설에 빠지다’는 한때 가장 대중적인 읽을거리이자 즐길거리였던 ‘딱지본 소설’을 총망라했다.
딱지본의 유래에 대해선 정설이 없다고 한다. 일본에 원색으로 화려하게 채색한 사각형 딱지가 있는데, 딱지와 비슷해 딱지본이라 불렀다는 얘기는 있다. 마치 화투의 그림처럼 화려한 채색의 표지 그림이 딱지본의 주요 특징이다. 딱지본은 오늘날 웹소설이나 웹툰에 비유할 수 있겠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겨 읽었다는 점에서 인기의 범위가 웹소설·웹툰보다 더 넓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딱지본 소설 작품 200여 점을 대부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많은 딱지본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한국근대문학관 외에 국립중앙도서관 정도다. 문학관이 소장한 가장 오래된 딱지본 소설은 1908년 광학서포에서 발간한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설’이며, 딱지본의 시대는 1950년대를 넘어 길게는 1970년대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전우치전’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의 고전소설, ‘이순신전’ ‘홍경래전’ ‘서산대사전’ ‘을지문덕전’ 같은 실제 역사와 인물을 다룬 영웅 서사까지 딱지본의 소재였다.
1층 전시장에선 당대 딱지본 소설의 인기, 유통 과정, 내용 등을 살필 수 있다. 딱지본은 행상이 좌판에 쫙 펼쳐 놓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최남선(1890~1957)은 딱지본을 ‘육전(六錢)소설’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당시 국수 한 그릇 가격이 6전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출간된 ‘단종대왕실기’의 경우 10만부 이상 판매됐다고 한다. ‘유충렬전’ ‘춘향전’ ‘심청전’ 등 고전소설 또한 판매 부수가 3만~4만부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고, 신소설도 2만부를 넘겼다고 한다. 100쪽 내외의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크게 인쇄된 글씨에 한글로 쓰여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구해 읽을 수 있다는 게 딱지본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강명화전’ 등 훗날 영화로도 제작된다.
한국근대문학관 김락기 관장은 “우리가 한글을 써 온 방식과 흐름에도 주목할 수 있다”며 “일제강점기에도 한글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딱지본 소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층 전시실에서는 조금 더 다양한 딱지본 소설을 만날 수 있다. 해외 여행이 쉽지 않은 시대에 독자가 대리만족을 느낄 만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 등 외국을 배경으로 한 내용의 소설, 탐정소설, 삼국지 등을 소재로 한 영웅소설, 역사물,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연애소설 등이 나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 권기옥(1901~1988) 선생을 모티브로 한 것 같은 ‘마적과 미인’(1933·박문서관)이 흥미롭다. 아버지의 원수인 마적에게 복수하고자 비행사가 되는 여성 영웅담으로, 일제를 마적에 빗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영원한 고전 소설 ‘춘향전’(혹은 ‘옥중화’)의 시대별 딱지본 판본 3권을 비교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2층 전시실에는 한국근대문학관 또는 민간 출판사에서 복각한 딱지본 소설을 펴 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했다. 익숙한 이야기들과 딱지본 표지들을 통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오는 5월25일까지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