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으로서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익숙·능숙함이란 과정 통과해야
느끼는 순간 변화가 필요하단 신호
이러한 변곡점은 작은 것부터 시작
대개는 일, 그리고 함께있는 사람

적어도 일년 이상 한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익숙함이다. 머물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익숙함도 있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익숙함도 있다. 함께 있는 사람에 대한 익숙함도 빠질 수 없다. 머물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익숙함이란 적어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모양이고 어떻게 가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 공간에서의 움직임에 있어 자유로우며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도 포함된다. 물론 이러한 익숙함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느끼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익숙함이다.
한편 시간의 흐름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익숙함도 있다. 그것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익숙함이다. 일에 있어서의 익숙함은 그 일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시간이나 자원 등에 대해 스스로의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더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등에 대해 가늠할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만일 하고 있는 일이 매순간 새롭게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일정한 주기를 기점으로 반복되거나 순환되는 유형의 일이나 특정한 프로세스나 도구를 적용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울러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익숙함 역시 저절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대한 익숙함이란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 그리고 선택 등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동안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들로부터 기인한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익숙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과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인 관심과 상호간의 배려 등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와 같은 익숙함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미건조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게다가 익숙하다는 것을 잘하고 있다거나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물론 익숙한 것과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익숙함을 느끼게 되면 현실에 안주하라는 유혹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다행히 이와 같은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면 익숙함은 능숙함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능숙함은 숙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적어도 개인의 소명의식이나 동기가 뒷받침되었을 때 가능하다. 필요한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익숙함의 범위는 개인에게 국한된 측면이 강하지만 능숙함의 범위는 개인을 넘어선다. 능숙하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거나 기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데 있어 익숙하다는 것과 능숙하다는 것의 차이가 일례가 될 수 있다.
능숙함에 이르렀다면 이어서 성숙함을 생각해봐야 한다. 성숙함은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책임의 울타리는 개인이나 조직의 사명(mission)을 비롯해서 하고 있는 일의 목적과 해야 하는 이유 등이 될 수 있고 보다 작은 범위에서는 개인의 역할과 역할에 따른 의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성숙함은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고 일상에서 하는 말이나 행동하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인으로서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익숙함과 능숙함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개인에게 있어 익숙함과 능숙함은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과의 타협 혹은 부주의나 게으름과도 연계되어 있다. 이는 익숙하고 능숙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익숙함과 능숙함을 느끼는 순간을 크고 작은 변화나 개선의 출발점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면 익숙함과 능숙함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일종의 신호이자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변곡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호와 변곡점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대개는 자신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 하고 있는 일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이다.
/김희봉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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