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나요?… ‘마법의 성’은 한 번도 1위를 한 적이 없다

최근 짧은 영상 플랫폼의 인기에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 자극적인 가사의 노래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서정적 멜로디에 담백한 가사를 붙인 김광진(61)의 음악은 세대 구분 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 세대에 김광진은 비비(BIBI), 악뮤(AKMU) 수현, 윤하 등이 부른 ‘편지’의 원작자로, 그들의 부모 세대에는 국민가요인 ‘마법의 성’을 만들고 부른 가수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친한 친구에게 “내 아들이 네 노래를 너무 좋아해”라는 말을 들었다는 김광진은 “음악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요소가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시대마다 다른 화법이 있어요. 요즘에는 단도직입적인 가사가 많은데, 90년대 노래들은 감성을 울리는 절묘한 표현이 많았어요. 요즘 시대에는 예전의 작사 방식이 오히려 좀 신선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동구에서 나고 자란 7남매중 막내
아버지는 ‘지성소아과’ 故 김관철 원장
‘인일약국 딸’ 아내 허승경씨도 동향

인천 동구에서 나고 자란 김광진은 어릴 적부터 음악과 가까웠다. 시작은 클래식이었다. 7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누나와 형들의 악기 연주 소리를 듣고 자랐다.
피아노를 전공한 큰누나와 누나의 제자들, 형제들을 가르치던 첼로·바이올린 선생님의 제자들이 정기적으로 그의 집에 모여 음악회를 열 정도였다. 그는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가족 중에선 가장 연주가 서툰 편이었다고 한다.

유복한 가정의 막내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 김관철 원장은 동구 금곡동에서 ‘지성 소아과’를 운영했다. 당시 인천에 몇 없는 소아과 중 하나였던 이곳은 늘 아이들로 붐볐다.
베이비붐 세대의 ‘추억의 공간’이었던 이 병원 건물은 동구가 매입해 2021년 12월 청년을 위한 공간 ‘유유기지 동구청년21’로 조성했다. 청소년들이 드나들던 병원이 청년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동구 출신이면서 인천 골목 탐방가로 활동하는 유동현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당시 소아과 전문의가 인천에 많이 없었고, 지성 소아과 원장님이 명의로 소문이 나 있었다”며 “김광진의 아내인 작사가 허승경씨 어머니도 동구에서 ‘인일약국’을 오랫동안 운영하시고 계신다”고 했다.
중·고교때 팝음악 빠져 통기타 연주
SK마이크로웍스 이용선 대표와 듀오
대학졸업후 유학… 음악 대신 MBA
‘SM기획’서 첫 앨범… 주목 못 받아
중학생이 된 김광진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 음악에 푹 빠졌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빌보드 차트를 1~20위까지 꿰고 있을 정도였다. 통기타를 연주하고 따라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배리 메닐로우(Barry Manilow), 엘튼 존(Elton John), 빌리 조엘(Billy Joel) 등 주로 피아노 치는 남자 가수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고 따라 불렀습니다. ”

홀로 취미 생활로 즐기던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제물포고에 입학해 만났다. 현재 SK마이크로웍스를 이끌고 있는 이용선 대표이사와 통기타 듀오를 결성했다.
축제 무대에 올라 영국 록밴드 ‘스모키’(Smokie)의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Living Next Door to Alice)와 수지 콰트로(Suzi Quatro), 크리스 노먼(Chris Norman)의 ‘스텀블링 인’(stumbling in)을 불렀다. 그가 처음으로 선 무대였다.
“또래들 사이에서 팝 음악의 인기가 많을 때였어요. 저는 지금보다도 더 가는 ‘옐로우 보이스’였는데 허스키한 친구 목소리와 대비가 되면서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소년 김광진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연세대 경영학과 82학번으로 입학한 후에도 이어졌다. 대학에서도 이용선 이사와의 통기타 듀오 활동은 계속됐다. 그 당시 옆에서 기타 연주를 도와줬던 사람이 재즈 기타리스트 김영수씨다.
이용선 대표이사는 “광진이는 음악적 재능이 큰 친구였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서로 알게 됐는데 좋은 음악을 많이 알고 있었고 집에 가면 LP 수백장이 있어서 함께 들었다. 대학생 때는 한 팀으로 축제나 가요제 무대에 오르기도 했는데 곡을 쓰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했다.
당시 ‘월간 팝송’ 강정식 기자는 김광진 듀오를 데리고 음반사에 가서 오디션을 보게 했다.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오디션을 돌던 그에게 ‘괜찮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적극적 음반 제의는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유학길에 오른 그는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밟는다. 영어가 서툴렀던 그는 유학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음악이 그에겐 유일한 위로였다.
“학교를 계속 다닐까 말까 고민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연말 학과 장기자랑에서 빌리 조엘의 ‘저스트 더 웨이 유 아’(Just the Way You Are)를 부르자 기립박수를 받고 유명 인사가 돼 있었어요. 친구들이 말을 걸고 새 생활이 열리면서 학교를 무사히 잘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김광진은 1989년에 장은투자자문에 입사했다. 1991년 뜻밖의 전화가 왔다. 가수 한동준씨가 음반을 발매하는데 곡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그 인연은 유학 전 만들었던 데모 테이프에서 시작됐다. 김광진의 데모 테이프는 당시 음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녔고, 한동준도 그의 음악을 마음에 들어했다.
김광진은 귀국 후 이화여대 가요제에 현재 아내인 허승경씨와 함께 출전했다. 김광진은 자신이 쓴 곡에 코러스로 참여했고 이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유학 생활 때 위로가 된 가수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추모하며 쓴 ‘너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는 노래였다.
이 소식을 우연히 접한 한동준은 자신이 찾던 데모 테이프의 주인공이 김광진임을 알게 됐다. 수소문해 회사원 김광진에게 연락했다. 그렇게 김광진이 작사·작곡한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도’는 한동준 첫 앨범의 타이틀 곡이 됐다. 같은 해 김광진은 한동준 소속사였던 ‘SM기획’과 연이 닿아 첫 앨범 ‘Virgin Flight’를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 신승훈씨가 나왔는데 인기가 상당히 좋았어요. 제가 보기에도 신승훈씨의 음악보다 대중성이 떨어졌고. 음반은 거의 묻혔고, 저는 실망해서 한동안 집에서 우울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
박용준과 ‘더 클래식’… 이승환 제작
음악 전념 뜻 접고 만들었지만 대히트
3집까지 ‘여우야’ ‘편지’ 등 명곡 발표
2011년 ‘슈스케’서 다시 불려 재조명
앨범이 잘 안 된 경험 때문이었을까. 김광진은 음악에 전념할 생각이 당시에는 없었다고 한다. 이승환이 김광진과 박용준을 ‘더 클래식’으로 제작했을 무렵인 1994년에 김광진은 삼성증권 국제부에 애널리스트로 소속돼 있었다. 5개월가량 준비한 1집 ‘마법의 성’으로 데뷔 앨범 실패의 설움을 풀었다.
당시 앨범이 100만장 이상 팔렸지만, ‘마법의 성’은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 후보에만 머물렀다.
“방송 출연이 워낙 적어 방송 출연 점수가 높지 않았어요.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가기가 좀 어려웠고요”
이듬해 2집을 발매했다. 메가 히트곡을 발표한 이후 더 클래식의 의욕도 컸다. 마법의 성과는 다른 형태의 노래를 쓰고 싶었던 그는 ‘여우야’ ‘송가’ ‘노는게 남는 거야’ 등 다양한 시도를 한 음악을 앨범에 담았다.
이후 더 클래식 3집(1997), 김광진 2집(1998), ‘편지’가 담긴 3집(2000년)을 발매한다.
김광진은 당시 ‘편지’가 이렇게 잘 알려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멜로디를 만들고 그 곡에서 영감을 얻어 가사를 쓰는 김광진은 가사를 붙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녹음 일정이 잡힌 당일까지 가사를 정하지 못해 인천에서 서울에 있는 녹음실로 올라가는 길에 그의 아내 허승경씨가 급하게 썼다. 허승경씨가 김광진이 아닌 선을 본 다른 남자에게서 받은 편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는 2001년엔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을 취득했다. 마법의 성을 발매한 이듬해인 1995년부터 시험을 준비해 7년 만에 붙었다. 메가 히트곡을 보유한 음악가가 왜 이런 자격증을 따려고 노력했을까.
“더 클래식 2집부터는 음반이 잘 팔리지 않았어요. 음악을 해서 버는 수입이 많지 않았고, 기획사 없이 혼자 활동했기 때문에 스케줄도 많지 않았고요. 2001년에 자산운용사로 취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잘한 선택 같습니다.”
2002년 7월 ‘동경소녀’가 포함된 3집 앨범을 낸 이후 김광진은 동부자산운용(현 DB자산운용)에서 펀드 매니저 생활을 하며 직장 생활에 몰두했다. 음악 생활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동경소녀가 담긴 앨범 ‘솔베이지’를 정말 열심히 만들었어요. 스스로도 음악적 완성도가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했어요. 마법의 성만큼 그런 반응이 있기는 어려웠던 건데 반응이 크지 않았던 것에 많이 실망했던 것 같아요.”
직장 생활에 몰두하던 그의 앨범이 재조명을 받는 기회가 ‘기적’처럼 찾아왔다. 2011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3에서 참가자들이 김광진의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경연 참가자 중 버스커버스커는 ‘동경소녀’를 편곡해 불렀고, 투개월은 ‘여우비’를 골랐다. 또 여러 참가자가 ‘편지’ ‘진심’ 등을 불렀다.
“기적같은 느낌이었어요. 얼마 전에 확인해 보니 버스커버스커가 부른 동경소녀가 음원사이트에서 2천만회 재생됐더라고요. 후배 가수들 덕분에 제 노래가 많이 알려진 뒤 ‘내 음악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었구나’하고 위로를 받았어요.”
김광진의 노래들은 꾸준히 선후배 가수들이 부르고 있다. ‘가수들이 선택한 음악’이 원작자인 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음악이 가지고 있는 멜로디의 힘이 아닌가 생각해요. 멜로디는 가슴 속에 있는 게 나오는 것인데, 듣는 사람들에게 진심이 전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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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금융맨’서 본격 음악인 복귀
지난해 30주년 콘서트 등 무대 꾸준
“데뷔후 가장 활발 활동, 항상 설레”
10년간 직장 생활 후 그는 금융맨의 삶을 멈추고 음악인으로 복귀했다. 애널리스트 경력부터 펀드매니저까지 20여 년이면 충분히 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난해 더 클래식 결성 30주년 콘서트를 시작으로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데뷔 이후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김광진은 자신의 음악 생활에서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고 말한다. 공연을 하며 레게 머리를 하고 가죽 바지를 입는 등 스타일의 변화도 생겼다.
“공연을 그래도 정기적으로 하다 보니 좋은 라이브 무대도 쌓여 가고 있어요. 원래 고음이 잘 나는 보이스였는데 운이 좋게도 나이가 먹어도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어요. 젊을 때보다 저음이 좋아져 음역대도 넓어졌어요.”
오는 3월29일에 여는 단독 공연 ‘Song Book 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는 김광진은 관객과의 만남이 항상 설렌다고 했다. 이번 콘서트에선 기존 곡들을 더 어쿠스틱한 느낌으로 새롭게 편곡해 준비했다. 가사를 책으로 엮어 공연에 온 관람객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저도 이제 90년대 한국의 음악인으로서 한국의 음악을 다른 나라에 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올해는 해외에서도 활동을 하기 위해 차분히 공연 계획을 세우는 등 노력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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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