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낙담, 남은 재판 어쩌나
주범만 징역 15년형… 法, 남씨 재정악화 인지 시점부터 고의성 인정
범죄집단 혐의 등 무죄 판단… 내달 3차 판결도 비슷한 양상 보일듯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를 저지른 건축왕 남헌기(63)씨가 추가 기소 사건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범행에 가담한 일당 대부분에게는 무죄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실형’은 주범 단 1명…일당 중 절반 무죄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손승범)는 20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사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횡령) 위반, 범죄집단조직 등 혐의로 기소된 건축업자 남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사기 등의 혐의를 받는 남씨의 딸을 비롯한 공인중개사, 바지 임대인 등 30명 중 15명에게는 무죄를,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는 징역 6개월~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중 중복 기소됐거나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가 확인돼 공소사실 일부에 영향을 미쳤다”며 “하나의 사실에 이중으로 판결을 내릴 수 없어 일부 판결은 면하게 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남씨는 2021년 3월부터 전세보증금을 변제할 능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일부 피고인은 남씨의 재정 악화 사실을 2022년 5월27일 진행된 중개팀 회의 이후에나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남씨를 제외한 피고인들은 이 시점 이후 체결한 임대차 계약에만 사기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피고인 등은 보증금 편취 고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남씨가 사기 범죄를 목적으로 범죄집단을 조직하고, 피고인들이 이에 가입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범죄집단조직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남씨는 동해망상지구 사업과 관련해 토지 낙찰 자금이 부족하자 (미추홀구 신축 건축물) 공사 대금을 빼돌려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150차례에 걸쳐 117억원을 임의로 사용했다”고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방청석을 가득 채운 피해자들은 피고인들이 무죄를 선고받을 때마다 큰 한숨을 내쉬었다. 재판이 끝나면 매번 진행하던 기자회견도 따로 열지 않았다.

■감형된 1차 기소 사건과 유사 판결…추후 재판에도 영향 미칠 듯
남씨 일당은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세입자 665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536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2023년과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열린 재판은 그중 2차 기소된 사건(세입자 372명, 전세보증금 305억원)에 대한 것이다. 일당 18명의 범죄집단조직 혐의와 남씨의 100억원대 횡령 혐의도 다뤄졌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결심 공판에서 남씨에게 무기징역을, 일당 30명에게 모두 실형을 구형하는 등 엄벌 의지를 보였지만, 끝내 구형량과 크게 차이 나는 형량이 나왔다.
이날 재판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남씨 등 일당 10명은 처음 기소된 사건 1심에서 사기죄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가 지난해 8월 항소심에서 징역 7년으로 감형됐다. 징역 4~13년을 선고받았던 나머지 9명도 무죄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고, 이 판결이 지난달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1차 기소 사건 재판부는 남씨와 일당이 보증금 반환을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됐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시점 이후 보증금을 새로 받거나 증액한 사례 등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날 선고를 맡은 재판부 역시 남씨의 사기 혐의 액수 305억원 가운데 174억원만 인정하는 등 이전 재판부와 같은 판단을 내렸다. 또 피고인 다수가 받고 있는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 등을 무죄로 판단하는 등 1차 기소 사건 판결을 대부분 원용했다.
다음 달 31일에는 3차로 기소된 사건의 첫 재판이 예정돼 있다. 이 재판도 대법원 판결 등을 참고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