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중국 추격 중첩위기 속
여야 정쟁으로 법안 처리 제자리
“현실 모르고 탁상공론” 업계 비판

세계 반도체 경쟁 심화에 ‘트럼프 쇼크’까지 더해져 경기도 핵심 산업인 반도체가 중첩 위기에 처했다. 어느 때보다도 경쟁력을 끌어올려 민첩하게 대응해야 할 시기이지만, 애꿎게 정치적 공방에 발이 묶였다.
주52시간 근로제가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 특례를 적용하는 문제가 논란의 중심에 서며 좀처럼 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내 반도체 업계에선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정쟁에 갇힌 지역 정치권도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해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 달 내로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에 최소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반도체는 그간 무관세가 적용됐다.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진 않지만, 직·간접적 영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대만 등 기존 반도체 강국들에 더해 중국 등의 추격 속도가 빨라진 점도 K반도체의 위기를 가속화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주요 사업장이 밀집한 경기도 경제엔 직격탄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관련 법 개정이 다방면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관건은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엔 주52시간 근로제 적용을 예외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기 대선 국면과 맞물려 이를 둘러싼 여야간 찬반 양론이 거세졌고, 결국 지난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반도체특별법 처리가 무산됐다. 그나마 같은 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반도체 기업의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를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핵심인 노동시간 규제 완화가 가로막히자 반도체 업계에선 좌절하는 모습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일 입장문을 내고 “주52시간제 완화 등이 담긴 반도체특별법이 국회에서 완만히 협의돼 통과되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이 현장의 절박함은 외면한 채 탁상공론에만 몰두한다는 볼멘소리와 함께, 반도체 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함에도 지역 정치권에서 이렇다 할 대응을 못 하고 있는 점에도 비판이 일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너무 현실을 모르는 것 같다. 지금 업계 상황은 매우 절박하다”며 “지역 정치인들을 포함해, 정치권에서 정쟁에만 몰두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고 토로했다.
정작 반도체 경기가 지역 경제와 직결되는 지자체 국회의원들은 정당을 막론하고 ‘네 탓’ 공방 중이다. 민주당 소속 홍기원(평택갑) 의원은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될까봐 걱정된다”면서도 “문제가 된 주52시간제 특례 외 다른 지원사항을 진행하기 위해 법이 우선 통과돼야 하는데 ‘절대 협의 불가’라는 국민의힘 측 강경한 태도에 굉장히 유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안철수(성남분당갑) 의원 측은 “판교에 반도체 팹리스 기업들이 많은데 주52시간 근무 규제로 연구·개발에 제한을 받고 있다. 산업 특성을 고려해 노동시간 규제 특례는 반드시 필요한데, 뛰겠다는 연구원들 뒷다리를 잡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하지은·김우성·강기정기자 z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