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규제 강화 대안과 해외 사례는

 

여가부 委 유통 제재권 없어 ‘한계’

미성년자 혐오 발매 의뢰 제한 못해

불법콘텐츠 방치 업계 규제도 필요

EU, 페북 등 세계 매출 6% 과징금

미성년자가 음란하고 저속한 혐오 표현, 범죄 행위 등의 가사를 담아 제작한 음원들이 멜론·지니 등 국내외 유명 음원 사이트(플랫폼)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무분별하게 발매되는 것을 막으려면 유통 단계 등에서 이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음원 심의와 유통, 사후 규제 등을 다룬 제도가 여러 법령에 흩어져 있고, 소관 업무도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분산돼 있어 개선책을 도출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하루에도 200~300개 신곡이 국내외 음원 사이트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 기관 ‘청소년매체환경보호센터’의 모니터링이나 사후 심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 ‘심의’는 여가부, ‘유통’은 문체부, ‘삭제’는 방심위

10대 청소년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혐오·비방·욕설, 심지어 마약 복용이나 성범죄 등의 가사를 담아 제작한 음원들은 여과 장치 없이 유통사를 거쳐 대형 음원 사이트나 유튜브 등 SNS에 발매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음반심의위원회가 사후에 선정성·폭력성 등을 심의해 19세 미만 이용 금지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가사 등 음원만 심의할 수 있고 제작자나 유통 과정의 문제를 제재할 권한은 없다. → 표 참조

여가부 관계자는 “(경인일보 보도 이후) 음반을 발매하는 대형 유통사들을 대상으로 청소년이 제작한 19금 음원을 확인해줄 것을 권고했다”며 “다만 소형 유통사가 워낙 많이 난립해 있고 강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음원 플랫폼에 발매되는 음원의 유통 과정을 관장하는 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다. 문체부는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음악산업법)에 근거해 음반과 음원 등의 유통에 관한 제도를 다룬다. 그러나 음악산업법에는 시중에 유통되는 음원의 선정성이나 청소년 유해 여부를 따져 제재하는 조항이 없다. 미성년자가 혐오 음원을 만들어 유통사에 발매를 의뢰할 때 이를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지 않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나 음란성이 있는 정보를 유통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를 제한 또는 삭제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해당 조항 역시 청소년이 혐오 음원을 비롯한 유해 매체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이용자의 측면에서 제한하는 내용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청소년이 유해 매체물을 제작한 경우를 막을 수 있는 내용은 현행법에 없어 입법을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 “음원 유통사·플랫폼 등에도 책임 부여해야”

음원 유통사와 플랫폼 등 업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동·청소년 인권단체 ‘탁틴내일’ 이현숙 상임대표는 “정부가 (혐오 표현 등이 담긴) 개별 콘텐츠를 일일이 모니터링하고 규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불법 콘텐츠를 방치하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등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SNS는 청소년들이 혐오 표현 등 유해 콘텐츠를 자주 접하고 유통하는 경로로 꼽힌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청소년이 유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원인은 SNS 등에서 여과 없이 자극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는 환경 때문”이라며 “해외에서는 청소년의 SNS 사용 시간대를 제한하고, 유해한 콘텐츠에 노출되지 않도록 플랫폼 업체에 알고리즘을 조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 관련 법령은 매우 포괄적으로 명시돼 있어 사각지대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제대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 EU는 벌금 부과, 미국은 자율규제에 초점

청소년이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이나 유해 콘텐츠에 노출되지 않도록 강력히 제재하는 사례는 유럽연합(EU)에서 찾아볼 수 있다. EU는 2023년 8월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 DSA)’을 시행해 미성년자 유해물, 혐오 표현, 테러물 등이 포함된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DSA에 따르면 플랫폼 사업자는 매년 1회 이상 콘텐츠 관리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하고, 불법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한 개인·단체 등을 제한할 의무가 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구글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이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전년도 전 세계 매출의 6%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은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운영하는 ‘메타’는 혐오 콘텐츠 모니터링과 삭제를 위해 미국 내에서 3만명을 고용하는 등 자체 대응책을 마련했다. 유튜브도 혐오 표현과 불법 정보가 포함된 콘텐츠를 삭제하고 신뢰도 높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미국 언론과 협업한 자체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있다.

/한달수·정선아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