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현 창영초 학생들, 인천 첫 만세운동
동구, 선열 희생 기리기 위해 매년 기념행사
1㎞ 행진하며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 따라
역사의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참여 당부

일본의 저항에 맞서 ‘대한독립만세운동’을 전 세계에 울려퍼지게 한 3·1만세운동이 올해로 106주년을 맞이한다. 우리 후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그날 3월1일 역사의 시작에는‘대한독립 만세’ 함성이 울려 퍼지게 한 인천 동구 창영초등학교가 있다. 3·1운동 역사와 함께 인천 문화의 중심지였던 동구에서 성대한 기념식이 오는 3월1일 개최된다.
인천의 3·1만세운동 역사는 아래와 같다. 독립운동가들은 1919년 3월1일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고,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중략).”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이후 독립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인천에도 만세 물결이 전해졌다. 당시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인천 창영초) 학생들은 1919년 3월6일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거리로 나와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인천 최초의 만세운동이었다.
인천 창영초에서 독립운동이 시작되자 일본 경찰들은 학교 교원들과 내통하며 학생들의 동향을 조사하고 감시했다. 학생들은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며 거리로 나와 만세운동을 진행했다.
인천 만세운동은 인천 시내 중심인 경인가도, 만국공원, 관교리, 황어장 등으로 이어졌다. 창영초는 인천 3·1운동의 역사이자 얼이 밴 곳인 셈이다. 동구는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기념행사를 개최해 선열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4년 3·1운동 105주년을 맞이한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유족과 광복회원, 시민, 학생 등 1천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헌화와 3·1운동 경과보고, 독립선언서 낭독, 3·1절 노래 제창, 만세삼창 순으로 경건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필자와 참여자들은 ‘1919년 3월, 인천의 함성’이라는 슬로건 아래 창영초~배다리삼거리~동인천역 북광장까지 1㎞를 행진하며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랐다. 또 만세 행진 중간에는 일본 헌병이 만세 행렬을 저지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독립 열사들의 결연한 모습도 재현됐다.
참여자들과 관람객들 모두 독립운동가들의 열정과 희생을 생각하며 가슴 뭉클함과 숭고함을 느꼈고 눈시울을 붉혔다. 필자 또한 “대한독립 만세”를 목청껏 외치며 함께 슬픔을 삼켰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매서운 추위에도 부모의 손을 잡고 나선 아이들의 고사리손이다. 부모들은 역사적인 재현 무대를 보며 아이들에게 독립운동가들과 일본 헌병이 부딪히는 상황을 현장감 있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역사의 현장을 눈에 담았다. 살아있는 역사 교육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 동구에서는 살아있는 역사를 전 국민에게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행사 전경, 행진, 독립 열사들의 결연한 모습, 감동한 관람객 모두를 담아 홍보 영상으로 제작했다. 3분여로 편집된 이 영상으로 동구민, 나아가 국민들과 소통했다. 동구의 역사와 문화, 감동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통했는지 3·1절 영상은 지난 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지자체 홍보대상’ 시상식에서 ‘역사·문화’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이 필자에게도 매우 기뻤던 이유는 우리 동구가 한때 인천의 중심이었고, 역사·문화적 지주 역할을 한 유서 깊은 지역이라는 것을 전국에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돌아오는 3월1일은 독립유공자 후손인 필자를 항상 울컥하게 한다. 3·1운동 역사의 현장이었던 동구의 단체장이 된 것은 필연인지도 모른다. 필자에게 선조들의 역사와 문화, 얼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은 무겁지만 꿋꿋이 이어가야 할 과제다. 역사의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동구의 3·1절 기념식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길 부탁드린다.
/김찬진 인천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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