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백인·남성·소설 대세였지만

‘관점의 균형’ 자각이 일기 시작해

사회적 약소자 옹호해온 작가 찾아

최근 韓 시인들 국제수상 잇따라 기대

詩, 소설번역보다 훨신 정교함 요구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4년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해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한국문학으로서는 숙원을 푸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넘어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으로 확장해갈 수 있는 유력한 현실적 필드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루 알다시피 노벨문학상은 1895년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분’을 선정하여 시상하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124년 역사를 이어왔다. 전문가들로부터 200여명 후보군을 추천받은 스웨덴 한림원 위원회가 1차로 20명, 2차로 5명을 가려낸 후 투표로 과반 지지를 받은 최다 득표자를 선정한다.

노벨문학상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대륙으로는 유럽, 인종으로는 백인, 성별로는 남성, 장르로는 소설이 확연한 대세였다. 이러한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수상 관행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 범주에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어 왔는데, 그러한 흐름 속에서 양차대전이 끝나고 여러 국민국가가 독립하면서 관점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80년대 이후 노벨문학상은 서구 아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백인 아닌 유색인, 남성 아닌 여성, 소설 장르 아닌 시, 희곡, 르포 심지어는 대중가요에 이르는 다양성을 안아 들였다.

이러한 수상 기준의 변화는 20세기 세계문학의 지형 변화 과정을 그대로 품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물론 노벨문학상이 서구 중심의 미학관을 내다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요새는 여전히 굳건하고 집요하고 지속적이다. 다만 그 반대편으로 방법적인 쪽문을 조금 열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근자의 노벨문학상은 사회적 약소자를 옹호해온 작가들을 찾아 그 주변성과 외곽성을 적극 평가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문학’의 지도를 그리려는 정치성을 확대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제한된 의미에서나마 그러한 변모를 통해 세계 모든 구성원을 포괄적으로 재배치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01년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이었다. 그의 시가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두었고 보편적 삶의 진보를 이끌어냈다는 것이 당시의 선정 이유였다. 그 후로 우리가 기억할 만한 시인 수상자로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W. B. 예이츠, T. S. 엘리엇, 파블로 네루다, 옥타비오 파스, 셰이머스 히니, 비슬라바 심보르스카, 밥 딜런, 루이즈 글릭 등이 있을 것이다. 소설가들에 비해서는 영성한 목록이지만, 그리고 세계적으로 중요한 다수의 시인들이 목록에서 빠졌지만, 이 이름들만으로도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의 면모는 제법 화려하고 당당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한국 시인의 수상은 언제쯤 가능할까? 그동안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서정주, 고은, 김지하 등이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다. 그 물결이 지나고 최근 여러 시인들이 유력한 국제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하면서 한국 시는 세계무대로의 확산 가능성을 한껏 높이고 있다. 여러 시인이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분들의 세계가 더욱 커져가면서 좋은 성취를 거두리라 희망해본다. 혹은 그 연장선에서 한국 시의 돌올한 빛이 비추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또한 크다. 그 점에서 한강 이후는 ‘시’라는 장르의 빛을 요청하고 있고, 또 그쪽을 향한 관심과 노력이 커져갈 것이다.

당연히 시는 번역의 난도(難度)가 소설보다 훨씬 크다. “번역을 통해 사라지는 것이 시”라고 말한 이는 노벨문학상이 끝내 외면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였다.

우리에게 ‘가지 않은 길’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그는 이렇게 시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그만큼 시는 번역가의 역량이 소설의 경우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요구되는 장르이다. 그러니 훌륭한 번역 인력 양성으로 한국 시 번역의 활황이 빚어지기를 기대해보게 된다. 그것이 한국 시인의 수상 가능성을 한결 높이는 불가결한 첩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강 이후의 노벨문학상에 한국 시인들이 훤칠하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원해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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