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오프’ 시리즈로 돌아온 작가열전

시리즈 첫 주제 ‘글자’… 새 방향 알려

부평 지역 중견 서예가 유형목·변효숙

이뿌리 영상서예와 레오다브 그래피티

나뉘어 있으면서도 서로 관통·연결돼

부평작가열전 스핀오프 ‘두 개의 방’ 전시장의 첫 번째 방 모습.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부평작가열전 스핀오프 ‘두 개의 방’ 전시장의 첫 번째 방 모습.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 부평구문화재단이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이어왔던 기획 전시 시리즈 ‘부평작가열전’이 올해부터 ‘부평작가열전 스핀오프’로 바뀌었다. 그 첫 번째 전시 ‘두 개의 방’이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에서 열렸다.

2014년 시작된 부평작가열전은 해마다 새로운 주제로 지역 연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했다. ‘본편에서 파생된 새로운 이야기’라는 의미로 TV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 ‘스핀오프’(Spin-off)를 붙인 부평작가열전은 기존 사업 취지를 이어가되 반복성·지역성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기로 했다.

기획전 ‘두 개의 방’은 스핀오프의 방향성을 알린다. 기존 시리즈에서 다루지 않았던 소재인 ‘글자’를 서로 다른 시각예술 매체, 혹은 중견 작가와 청년 작가의 구성으로 나눠 2개의 방에서 각각 선보인다. 재단 전시 기획자는 “글자를 쓰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며 기록하는 행위를 넘어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며 “뿐만 아니라 글자를 쓰는 일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방은 부평 지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고 있는 중견 작가 유형목과 변효숙의 서예 작품 총 16점을 전시했다. 서예는 단순히 쓰는 행위가 아닌 작가의 마음 자세와 태도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드는 전통 미술 장르다.

유형목 作 신라 향가 제망매가, 2024, 화선지에 먹, 450×220㎝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유형목 作 신라 향가 제망매가, 2024, 화선지에 먹, 450×220㎝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변효숙 作 이해인님의 만남의 길위에서, 2023, 화선지에 먹, 330×158㎝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변효숙 作 이해인님의 만남의 길위에서, 2023, 화선지에 먹, 330×158㎝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유형목 작가는 조선 중기 서예가 옥봉 백광훈의 시를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비문의 ‘필의’(筆意)로 표현했다. 가로 4.5m, 세로 2.2m 크기의 화선지에 목간 형식을 빌려 신라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를 써 내려간 작품은 힘 있게 뻗은 파임과 갈고리의 서체가 더해져 강한 기운을 드러낸다. 전시는 QR코드를 활용해 유 작가의 작품들을 한글로 해설해준다.

변효숙 작가는 판본체와 단아한 궁체의 한글 서예로 시인들의 유명한 글귀를 빼곡히 담아 같은 방 유형목 작가와 대비를 이룬다. 이해인, 도종환, 정호승, 천상병 같은 시인의 고운 말들을 띄어쓰기가 아쉬울 정도로 빠짐없이 마음에 꼭꼭 눌러 새기려는 듯하다.

묵향을 지나 두 번째 방은 ‘영상 서예’라 명명할 수 있는 이뿌리 작가의 ‘ABC-XYZ’(2024) 등 미디어아트와 그래피티 아티스트 레오다브(LEODAV)의 작품들로 구성했다.

이뿌리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들. 왼쪽 작품은 ‘ABC-XYZ’(2024, 단채널 영상, 7분 12초)이다. 오른쪽은 관객참여형 인터렉티브 작품이다.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이뿌리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들. 왼쪽 작품은 ‘ABC-XYZ’(2024, 단채널 영상, 7분 12초)이다. 오른쪽은 관객참여형 인터렉티브 작품이다.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ABC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를 일컫는 말인 동시에 알파벳의 시작이다. 이뿌리 작가는 안나푸르나 여행 중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3차원(X·Y·Z축) 공간에 가상의 히말라야를 구현했다. 그 속에 등장하는 작가의 신체 움직임과 번짐이 곧 서예가 된다. 작가는 인간과 자연이 처음 만난 문화적 순간을 재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관객이 빛을 이용해 화면에 글씨를 쓸 수 있는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가 설치돼 있다.

부평구문화재단의 ‘문화도시부평’ 프로젝트에서 만날 수 있었던 레오다브 작가는 기존 그래피티 작품과 함께 전시장 내 벽면에 ‘Love Camo Life’(2025)라는 제목의 신작을 직접 그렸다. 회색도시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마치 카무플라주(Camouflage·위장 무늬)를 연상하게 하는데, 서로 비슷한 색깔끼리 어우러진 카무플라주가 아닌 숨겨진 자신의 색깔을 모두 발산하며 살자는 의미라고 한다.

서예처럼 갈고리가 있거나 의도적으로 스프레이가 흘러내리도록 하는 기법까지, 작가의 예술적 태도와 사회 메시지를 담은 그래피티 또한 서예와 일맥상통하는 동시대 문자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4명의 작가들은 서로 다른 창작 방식과 세대라는 2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음에도 문과 문으로 관통되며 연결된다. 전시장 안에 굳이 2개의 방을 만들면서도 서로를 연결한 의도로 보인다. 전시는 내달 23일까지다.

레오다브 作 Love Camo Life, 2025, 스프레이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레오다브 作 Love Camo Life, 2025, 스프레이 2025.2.2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